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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리엔

우에하라 킨지는 언제나와 다를 바 없이 1층을 조사하고 있었다. 초고교급 경찰, 그 단어에 올려진 책임감이 더욱 막중하였다. 겉으로는 티내지 않았지만, 우에하라는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있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을 한탄하고 있었다. 사실 조사할 만한 곳은 전부 다 하였다. 사실상 1층에는 단서가 거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었고, 그것을 깨달은 건 우에하라 자신뿐인지라 우에하라는 모두가 무기력해지지 않도록 최대한 그 사실을 숨기고 더욱 열심히 조사할 것을 부탁했지만, 그것도 언젠가는 무의미해지겠지. 문득 고개를 들어 감시카메라를 보았다. 왜 이런 짓을. 목에 맨 넥타이가 더욱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 우에하라, 뭐하고 있어? "

 

킨조 츠루기. 초고교급 신부.때마침 조사하다 만난 우에하라는 킨조가 온 것도 모른 채 한없이 감시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킨조는 조심스레 다가가서는 어깨를 두어 번 건드렸고, 우에하라는 아, 하며 그제서야 우에하라를 보았다.

 

" 미안하다, 잠시 정신이 팔려서... 무슨 일인가? "

 

" 아니야, 멍해보여서... 피곤하다면 조금 쉬었다 하는 게 어때? 요즘 들어 부쩍 피곤해보이거든. "

 

우에하라는 확실히 갇힌 첫날에 비해서 10년은 먹은 얼굴이었다. 우에하라는 고개를 두어 번 느릿하게 저었다.

 

"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하도록 하지. 너희들만 시키고 나만 쉴 수는 없으니까. "

 

킨조는 예상한 대답이라는 듯 우에하라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 심야 시간까지 쪼개면서 조사하고 있는 걸 모를 줄 알았어? 우에하라. 조사도 좋지만, 네 건강부터 챙기도록 해. 아프면 정말 해야 할 때에 조사를 못할수도 있잖아. "

 

우에하라는 쓴웃음을 짓고는 대답했다.

 

" 걱정이 많군, 킨조. 내 몸은 충분히 내가 관리할 수 있다. 그러니까 ㅡ "

 

말하면서 점점 안색이 안 좋아지던 우에하라는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졌다. 킨조는 서둘러서 그의 이마를 만져보았다. 불덩이 같아, 중얼거리고는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고는 소리쳤다.

 

"마에다! 코바시카와! 나 좀 도와줘. 우에하라가 쓰러졌어. 우선 개인실로... "

 

 

눈을 떠보니 낯익은 개인실 천장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옆을 보니 킨조가 어두운 얼굴로 옆에 앉아서 기도하고 있었다.

 

" 폐를 끼쳤군, 미안하다, 킨조. "

 

킨조는 우에하라가 눈 뜬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에하라,사흘 내리 누워있었어. 이노리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는지...

 

우에하라는 킨조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그를 살펴보았다.

 

" 킨조, 해야 할 말이라도 있나? "

 

" ... "

 

킨조는 침을 꼴깍, 삼켰다, 입 안이 메말라가는 것이 느껴졌고, 무심코 혀로 입 주변을 핥았다.

 

" 다 알고 있어, 우에하라. "

 

" ...? "

 

" 땀을 하도 많이 흘려서, 갈아입을 옷이 없나 네 옷장을 잠시 열었어. 그러다가 떨어져 있는 다이어리를 보게 되었는데... 아무것도 없다,고. 단서라면 위층에 가야 있을거라고... "

 

우에하라는 고개를 돌렸다. 언젠간 얘기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이다지도 빨리 올 줄이야.

 

" 미안하다. 더 잘 숨겼어야 하는건데... "

 

" 내가 그걸 얘기하는 게 아니잖아, 우에하라. "

 

킨조는 여전히 우에하라를 보지 않으려 하며 말을 이었다.

 

" 생각해봤어. 네가 얘기하지 않은 이유를. 나는 경찰도, 탐정도 아닌 그저 신부니까, 추리에는 능숙하지 않을지 몰라도. "

 

숨을 크게 들어쉰 다음, 천천히 말을 잇는다.

 

"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지? 물론 애들이 무기력해지는 것도 있을거야.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어떻게든 위층으로 올라가야한다고 생각한 몇몇 이들은 자살을, 몇몇 이들은 누군가를 죽여서 단서도 없는 이곳에서 나가려 했겠지. "

 

" 킨조. "

 

" 더 빨리 알았다면 네가 이렇게 몸을 상하면서까지 조사할 일도 없었을텐데. "

 

제 몸보다 한 치수 커보이는 사제복 안으로 손을 넣는다. 쇠가 부딫히는 소리가 들렸다.

 

" 킨조, 뭘 하려ㅡ "

 

총이었다. 검고 번쩍이는 총. 그 총구는 우에하라가 몇 번이나 현장에서 만났던 익숙하고도 이질적인 검은 구멍. 그것은 천천히 킨조의 어깨에서, 귀에서, 관자놀이로.

 

" 미안해, 우에하라. 역시 희생자가 나오지 않고는 방법이 없어. 그렇다면, 차라리 검정과 피해자, 2명보다는 1명이 낫겠지. 네가 목격자라면 다들 믿어줄거고. 메카루라면 조사해서 알아낼거야. "

 

침대에서 뛰쳐나온다. 총이 너무나도 무섭게 느껴졌고,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들이 헛것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네가 들고 있는 검은 덩어리에 손을 뻗었다. 뻗고, 또 뻗었는데, 네 손은 이미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네 머리를 뚫고 지나가 바닥에 또르르, 붉은 액체와 함께 떨어졌다.

 

" 우에하라. "

 

" 말하지 마라, 킨조. 지금, 지금 이노리를 불러올... "

 

옆에서 흐르는 피 때문에 킨조의 시야는 점점 흐려져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 때문이 아닌 것을.

 

" ... 우, 에... 하라. "

 

" 말하지 말라고. "

 

다시금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는 이미 죽음이 깃들어 있었다. 평소의 차분하지만 선명했던 목소리와는 너무도 달랐다. 왜 그러나,킨조.곧... 죽을 사람처럼. 사제복은 검은색에서 검붉은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 우에하라, 넌... 꼭, 살아남아... 단서를 찾고, 나가서... 행복하게. "

 

말을 할때마다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보통 이럴때는 어떻게 행동했었지? 분명, 분명 알고 있는데도. 어째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손이 덜덜 떨렸다. 네가 영영 닿지 않을곳으로 떠나가버릴 것 같아서. 머리에서는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피는 어느샌가 우에하라에게도, 개인실 바닥에도 잔뜩 흘렀다. 대신 내가 죽을 수만 있다면. 시간을 돌려서 총구를 저에게 향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 그가 당장 죽지 않고 말을 하고 있는 건 순전히 정신력의 힘이겠지.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네가, 이런, 왜...? 두려워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깊은 곳에서 검고 기분나쁜 무언가가 자신을 좀먹어가는 느낌이었다.

 

" 네... 잘못이 아니야. "

 

힘겹게 숨을 내뱉으며 말하는 그가 보고싶지 않았다. 그의 말이 듣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꿈이라고 해줘. 그런 소리보다는 차라리, 차라리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고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하지만 이 현실이라는 것이 저를 무겁게 짓누른다. 절망감이 목을 조르면서 웃고 있다. 이노리를 불러야. 이성이 외치고 있지만, 양호실도 열리지 않은 이 상황에서 사실상 치료란 불가능했다. 그럴바에 1초라도 네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아무것도 못하는 본인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뭐가 초고교급 경찰인가, 가장 소중한 이도 지키지 못할거라면 난 무엇 때문에 경찰이 되었나. 입술에서 피가 나는지 비릿한 쇠맛이 났다.

 

"...우에하라. "

 

한참 색색거리며 숨을 고르는 소리만이 들려오던 그와 나 사이에서 내 이름이 불려진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터라 천천히 시선을 네 쪽으로 향하였다. 그는 아까부터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눈동자는 허무해질 정도로 맑았다. 조금 흐려지었을지언정, 또렷하게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왼손이 경련을 일으키듯 떨리다 천천히 들어올려졌다. 그리고는 나의 볼을 쓰다듬었다. 차게 식어 축축한 것이 묻어나는 게 느껴졌다. 왼손에 살며시 손을 가져다 대었다. 차갑다 못해 무기질적이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아, 안 돼, 안 돼... 나는, 킨조, 너 때문에, 지금... 살아있는 거라고. 네가 나의 희망이 되어주었고, 네가 나를 지지해주었다고, 말해야 하는데. 앞으로 정말 얼마 안 남았는데.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보아왔음에도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은 처음이다. 무슨 감정이지? .. 추악한 욕망이다. 그저 내게 소중한 너만큼은 죽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욕망. 그런 나 자신에 구역질이 나 고개를 푹 숙이자, 바람 빠지는 듯한 네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너, 와 꼭, 나가고... 싶었는데 말이지... "

 

아쉽게도, 그러지 못하게... 되었으니... 꺼져 가는 불빛처럼 그의 목소리가 사그라든다. 볼을 힘없이 어루만지던 손길이 멀어져 간다. 툭, 하고 그의 팔이 바닥으로 떨구어졌다. 순간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니, 그의... 그의 표정이. 눈을 감은 그의 표정이 지독하게도 편안해보여서. 힘이 쭉 빠졌다.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축 늘어진, 살아있었다고 증명하듯 아직은 온기가 남아있는 몸을 안아들었다.

 

" 나가고 싶었다면, ... 내 앞에서. 이렇게... "

 

이렇게 가서는 안 되지 않은가. 킨조, 시야가 부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너를 힘주어 안곤 속삭였다, 눈물이었다, 마지막으로 흘린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것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품 안의 너는 미동조차 없다. 너의 시간은, 이렇게 멈추어버렸다. 더불에 나의 세계에서도 무언가 끊겨버렸음에. 하나 둘 개인실 문 앞에 모여들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저 이렇게, 식어버린 너와, 시체처럼 살아있는 내가 이 공간 안에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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