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밤의 크리스마스
루이 WCC
초인종이 울렸다. 그러자마자 회색 머리를 한 남성이 오만상을 한 채 문을 열었다. 그의 앞에는 소라가 있었다. 하시모토는 실망하지 않았고, 안심하지도 않았다.
"반응이 점점 빨라지네요."
"매일같이 찾아오니까 당연한 일이지. 뭐야.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데? 누가 햄스터라도 발견했냐? 아니면 산노지 새끼가 코코넛 파티라도 열었나? 시시한 일일 텐데… 그보다 너 옷이 그게 뭐야."
하시모토는 이따금씩 소라가 특이한 분장을 하거나 의상을 입고 그를 찾아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녀가 귀찮고 비효율적인 일을 한 바가지 가득 담아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문을 닫는다고 해도 그녀는 그를 포기하지 않을 테니. 항상 포기하는 건 그였다.
소라는 산타 복장을 한 채 등 뒤에는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무표정하게 하시모토를 바라보다가 그에게 루돌프 머리띠를 씌워 주었다.
"뭐야 이 개같은 건?"
"사슴같은 건데요. 루돌프 몰라요, 루돌프?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의외로 잘 아시네. 아직 동심을 잃지 않으셨나 보네요. 그럼 불만 없죠?"
"아니. 많아. 많고 넘친다고. 내가 산타가 아니라 루돌프인건 둘째 치고. 왜 이 짓거리를 하는 건데? 오늘이 크리스마스라서?"
"당연하죠. 모두에게 깜짝 이벤트를 해 주려고요. 그리고 그 도우미가 하시모토 씨에요."
하시모토는 소라의 말에 넌더리를 내었다.
"거절한다고 하면 100만 크로우를 주겠지. 그런데 이제 너한테서 받는 돈은 지긋지긋해. 필요 없다고."
"그러면 자원봉사 해요. 제 도우미로. 산타의 루돌프로."
"누가 그걸 정했는데? 당구녀냐? 아니면 소방남이냐?"
"저요. 제가 산타니까 제가 정했죠. 루돌프는 원래 9명이어야 하지만… 하시모토 씨는 유능하니까 9인분 충분히 하실 수 있겠죠. 그래도 하시모토 씨 위에 타지는 않을게요. 부러질 수 있잖아요. 남자는 허리가 생명이니까."
"나 허리 튼튼하거든? 네 목말 정도는 태울 수 있어. 내가 대가리로만 브로커 일 한게 아니라고."
"목말이요? 진짜 가능하시겠어요?"
"못할 것 같냐? 야.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봐. 아니. 망할. 잠깐. 이거를 어떻게…“
하시모토는 어떻게 해야 민망함 없이 그녀를 목말태울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눈을 딱 감고는 그녀의 발목 사이에 목을 넣은 뒤 단숨에 일어나 목말을 태우는 데 성공했다.
"오. 진짜네요."
"이제 됬냐?"
"그럼 이제 선물을 주러 떠나보죠. 호 호 호."
"산타처럼 웃지 마라. 소름끼치려 한다."
하시모토는 인상을 찌푸리며 걷기 시작했다. 소라는 마냥 신나서 그의 어깨 위에서 징글벨이나 크리스마스 캐롤을 불렀다.
"어디로 가?"
"오른 쪽."
"무슨 네비게이션도 아니고…"
"무슨 승용차도 아니고…"
"내던져 버린다."
"목 비틀 거에요."
"정신 나간 여자."
"나이 많은 남자."
"나 너랑 동갑… 아. 다 집어 치우라고 해. 빨리 가기나 하자."
하시모토는 그대로 쭉 빠른 걸음으로 소라의 지시를 따라 모두가 모인 곳으로 간다. 소라가 모두를 모아 놓았겠지. 모두가 하시모토와 소라를 보며 놀란다.
"설마 둘이 썸씽 있는 거야? 그런 거면 완전 특종인데?"
요미우리가 그들을 향해 눈을 빛내며 수첩을 꺼내자 하시모토가 얼굴을 찌푸린다.
"절대 아니니까 신경 꺼."
"썸씽 있어요."
하시모토가 소라를 쏘아본다. 소라는 그를 향해 장난스러운 미소를 던진다. 하시모토는 이마팍을 손으로 때리며 한숨을 내쉰다.
"…난 소라 말이 더 믿음직한데. 저 하얀 양복씨 보다는."
"보셨죠, 하시모토 씨? 이래서 평소에 자유행동을 많이 해야 한다고요."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이 여자의 미친 소리는 너희들끼리 알아서 생각해. 난 이 거지같은 루돌프 일만 하고 갈란다."
"일은 하는 거냐…"
"호 호 호! 산타 클로스와 루돌프가 여러분들에게 선물을 주려 왔어요!"
"소라랑 하시모토잖냐…"
카사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하자 소라가 카사이에게 면박을 주었다.
"카사이 씨. 조금만 조용히 계세요."
"소, 소라 씨?! 네. 넵!"
"개같은 것들… 메리 크리스마스다. 씨발 것들아. 야. 산타. 선물 챙겨줘."
"다 준비돼있죠. 호 호 호."
소라는 선물 보따리에서 한 명 한 명의 선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마쿠노우치에게는 글러브를, 요미우리에게는 만년필을, 카부야에게는 장미향 샴푸를, 마에다에게는 컵라면을, 치에부쿠로에게는 손수 깎은 당구대를 주었다. 본인들이 가지고 싶었던 최고의 선물을 손에 넣은 그들은 기쁨에 가득 차서 소라를 껴안거나, 칭찬했고, 감사를 표했다. 하시모토는 그 모든 순간동안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시모토 쒸이이?"
"뭐야. 왜 불러?"
"오늘 수고하셨다고요."
"제일 많이 수고한 건 너지. 그 무거운 선물들을 다 옮겼으니까. 뭐. 내가 결국 다 어깨에 태웠으니 내가 제일 고생한 건가? 아무튼."
소라는 산타 모자를 벗으려다가 멈추었다.
"뭐야. 왜? 크리스마스는 끝났잖아."
"아직 12시 안 됐어요."
"참 빡빡한 여자일세. 그보다 빨리 방으로 돌아가."
"왜요?"
"왜냐니. 산타 선물 받아야지. 넌 착한 아이니까 너한테는 줄 거 아니야."
소라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왜 지랄이야?"
"아니. 잠깐만요. 저는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데요. 하시모토 씨. 산타를 믿어요? 아직도?"
"당연하지."
소라는 허억 소리를 무심코 낼 정도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눈동자는 평소보다 3배 정도 커졌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줄곧 살며시 웃고 있었다.
"하시모토 씨가 아직도 산타를 믿어요? 농담으로 치부하지는 않을게요. 하시모토 씨는 농담을 하기에는 너무 진지한 사람이니까. 어쩌다가 아직도 산타를 믿어요?"
"넌 무슨 개소리를 하냐. 산타가 예수도 아니고. 당연히 있지."
"하시모토 씨. 그러면 산타는 전세계에 적어도 1억은 넘을 수의 아이들한테 일일이 선물을 돌린다고요?"
"그러니까 산타지."
소라는 이마를 팍 쳤다.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도대체 이 사람이 어쩌다가 산타를 계속 믿게 된 건지는 알 길이 없었다. 아마도 그의 어린 시절 산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 후에 누군가가 산타는 가짜라고 귀띔해주기 전에 범죄에 뛰어든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했다. 범죄 조직의 누가 산타 이야기를 꺼낸단 말인가? 범죄 조직에 어린이가 어디 있고 있다 한들 누가 산타에게 선물을 받을 정도로 착하단 말인가? 소라는 머릿속으로 모든 퍼즐을 정리했고, 과연 이 동심을 간직한 아저씨에게 진실을 알려줄까 말까 고민했다.
"뭐. 산타 얘기는 나중에 해요. 그 때 하시모토 씨 표정이 궁금하니까. 그보다 하시모토 씨에게도 선물을 드려야겠죠."
"뭐야? 필요 없어. 네가 주는 선물이 뭐든 간에. 난 솔직히 말해서 관심 없어. 뭘 줘도 실망할거야."
"하지만 무한히 가치가 늘어나고, 돈을 벌어오며, 귀엽고, 예쁘고, 하시모토 씨를 이해한다면 어때요?"
"무슨 개 소리를…"
소라는 입고 있던 산타 옷을 순식간에 벗고 평소의 복장으로 돌아왔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저에요. 메리 크리스마스. 하시모토 씨."
소라는 그를 보며 윙크를 하고 손으로 키스를 날렸다. 하시모토의 찡그린 표정을 보자 소라는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낸 뒤 무릎을 꿇고 그에게 건넸다. 은반지거나, 혹은 결혼반지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것도. 아직 결혼하자고 하기엔 너무 이르니까. 반지라도 먼저 주는 거에요."
하시모토는 못마땅함과 미묘함이 공존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고민. 하시모토가 거절을 하지 않고 고민을 한다는 건 그가 반지를 받아들일 마음이 있거나, 혹은 그녀와 반지를 함께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는 뜻이었다. 소라가 애타는 듯이 하시모토를 쏘아보자 그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반지를 담은 그녀의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이게 내 선물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백발녀."
하시모토는 그 즉시 그를 껴안으려고 쫓아오는 소라를 피해 개인실로 허둥지둥 도망쳤다. 그는 개인실로 들어서자마자 문을 다급하게 잠궜다. 밖에서는 소라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가, 이 미친 여자야! 꺼져! 그 지랄떨면 산타가 선물 안 준다!"
"하시모토 씨이이이이! 그거 아세요?"
"뭐! 뭔데 지랄이야!"
"제가! 하시모토 씨를! 사랑한다는 거! 말이에요!"
"아! 몰라! 꺼져! 이 씨발아!"
하시모토는 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을 몇십번이나 후회했다. 이튿날 자신의 침대에 소라가 선물이랍시고 누워 있을거라곤 생각도 못한 채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시모토 씨."
소라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