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위한 선물
코토네
-현대물 AU, 초능력 AU
조용한 마을에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곧 검은색과 흰색이 반으로 나뉜 경찰차 여러 대가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려왔다. 가장 앞에서 달리던 차가 멈추자 모두 무궁화 꽃이 핀 것처럼 술래를 피하듯 멈췄다. 맨 앞 차의 문이 열리고 푸른 머리의 사내가 붉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에서 내렸다. 그를 선두로 다른 경찰들도 내려서 현장으로 다가갔다. 경관들이 사람들을 통제하는 동안 사내는 시체의 상태를 살펴봤다. 그는 차가운 겨울의 바닥에 늘어져있었다. 제대로 그어진 목은 죽기 전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을 것이다. 수염을 기른 이장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왔다. 사내가 깍듯이 허리를 숙이고 말했다.
"킨조 츠루기입니다."
이장이 몸을 덜덜 떨며 대답했다.
"잘 오셨소…또 살인사건이라니…정말 마라도 낀 건가…."
킨조는 조용히 눈을 감아 지금과 예전의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했다. 그의 사건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두 차례 시신이 발견됐었고, 세 번의 실종 신고를 받았었다. 유감스럽게도 사라진 셋은 찾지 못했다. 가뜩이나 대부분 도시로 가서 인구도 얼마 없는 마을이 더욱 삭막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는 소지품으로 시체의 신원을 살폈다. 활짝 열린 지갑은 아무도 건드린 흔적이 없었다.
"야마구치 카케루인가."
그의 몸은 웬만한 운동선수보다 강인해보였지만, 아무래도 목을 노린 흉기에는 저항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순경 몇 명이 지인들에게 그에 대해 물었다. 그는 험상궂게 생겼지만, 누구에게나 상냥해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이 실수로 병아리를 다치게 할까봐 닭장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고, 그렇게 말하며 한 할머니께서는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트리셨다.
"그리고 저희들에게 자주 아이스크림을 사주셨어요."
풍선껌 같은 분홍빛 머리를 두 갈래로 곱게 묶은 소녀가 증언했다. 얼굴은 파랬지만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그녀의 뒤에 숨은 그녀와 똑같이 생긴 소녀는 당장 집에 가고 싶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사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킨조는 고개를 숙였다. 무거운 죄악감과 책임감이 그가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벌써 세 번째, 실종까지 합하면 여섯 번째다. 그는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이번에도 해결할 수 없다고, 절망적인 관점이 자꾸만 그의 뇌를 좀먹었다. 경찰모를 눌러쓰고 그는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 본래 주민들이 적었고 그를 죽일 수 있을 만한 사람은 더욱 없었기에 알리바이를 물어보는 시간도 짧았다. 이것을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는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났던 강둑을 걸었다.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증거는 없었지만, 그의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류에 다다랐을 때 그는 노트와 펜을 들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그는 킨조를 발견하고 마치 파파라치가 사진기를 들이대듯 열정적으로 펜을 들었다.
"경찰 씨! 뭔가 진전이 있었나요?"
그의 주머니에 볼펜 여러 개가 보였다. 기자인 걸까? 킨조는 침착하게 말했다.
"일반인에게 수사과정을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역시 그렇겠죠? 어떤 만화에서는 초등학생들한테도 잘만 말해주던데…현실은 역시 녹록치 않네요!"
그가 활기차게 말했다. 머리부터 발가락까지 수상함을 풀풀 풍기는 남자였다. 킨조는 그가 피겨 선수처럼 도는 모습을 보다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요미우리 니케이입니다. 직업은 신문 기자…가 되고 싶네요. 성인이 된지 얼마 안 됐지만. 최근 사건이 자주 일어나니까 가만히 있다가는 저도 죽을까봐…경찰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열심히 추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들고 있던 노트를 킨조에게 보여줬다.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두 줄로 지워버린 내용도 있었고, 중간에 울었었는지 마른 눈물 자국도 있었다. 킨조는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허리를 깊게 숙였다.
"죄송합니다."
"네? 왜요?"
요미우리가 당황해서 그를 일으키려고 했다. 킨조는 내린 고개를 올리지 않았다.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어서…죄송합니다…."
구하는 게 없는데 뭐가 경찰이냔 말이다. 킨조는 손톱이 손바닥에 자국을 남길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분노와 허탄이 그의 발을 족쇄마냥 옭아맸다. 갑자기 침울해진 킨조를 보고 요미우리는 머리를 긁다가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경찰 씨는 제대로 하고 있어요! 경찰 씨가 아니었다면 여섯 명이 아니라 열여섯 명이었을 지도 모르잖아요? 최악이 아닌 것에 감사하자고요! 저는 경찰 씨 덕분에 버티고 있으니까요."
그를 위로하고 싶어서 요미우리는 일부러 목소리를 짜냈다. 킨조는 그의 말이 그저 자신을 달래기 위한 설탕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그는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를 닦았다. 몸에 좋지 않은 담배가 인기가 많은 이유를 알고 있다. 모든 부정을 외면할 정도로 눈앞의 쾌락은 매력적이다. 자각몽을 꿀 때 그 의식을 뽑아버리고 취하고 싶을 정도로 거짓은 아름답다.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요미우리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요! 기운 내세요. 이번에 잡으면 되죠! 저는 머리가 안 좋아서 못 하겠지만 경찰 씨라면 괜찮으시잖아요? 괜찮으시다면 제 노트를 보여드릴까요? 시간 낭비일 지도 모르지만…"
"아니요. 설령 작은 정보라도 모이면 중요해집니다. 허락해주시겠습니까?"
"도움이 된다면 당연합니다!"
그가 유쾌하게 말하며 노트를 건넸다. 킨조는 그의 필기를 보다가 특이한 걸 발견했다.
"이 초능력…이라는 건 뭡니까?"
요미우리가 대답했다.
"초능력으로 죽였을지도 모르니까 써봤습니다. 왜, 걔네 있잖아요. 쌍둥이. 언니랑 동생이 죄다 초능력자라고 소문이 돌아요. 귀신이 씌워졌다는 말도 있고. 그냥 헛소문이라고 하기엔 실감나는 증언도 있었고요. 그래서 만약을 가정해서…"
처음 들은 이야기였다. 초능력이라니, 심심한 사람들이 꾸며낸 말이겠지만 마침 둘의 알리바이는 불명확했다. 좀 더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그는 요미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 제가 도움이 됐을 리가 있나요? 그래도 경찰 씨한테 칭찬을 받다니 기뻐요…감사합니다!"
그는 요미우리와 헤어져 쌍둥이의 집으로 향했다. 그들의 집은 비만 오면 무너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절벽 옆에 있었다. 그는 문을 두 번 두드렸다. 안에서 누군가가 넘어졌다가 허둥지둥 문을 열었다. 사나운 살쾡이의 눈을 가진 언니 쪽이었다.
"증언은 아까 다 했잖아요?"
그녀는 불안한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킨조는 경계를 풀게 하기 위해 바로 알리바이를 묻는 것보다 내용을 좀 돌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사건 관련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있긴 하지만, 본질은 당신들에게 나도는 소문을 확인하러 왔습니다."
"그걸 굳이 지금 할 필요가 있나요?"
뒤에서 동생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들어오세요. 귀찮게 영장이라던가 뽑아오지 마시고요."
"야! 누구 마음대로 결정해?"
언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동생은 기만 조금 죽을 뿐 여전히 태연했다.
"하지만 언니…생각을 좀 해봐. 이렇게 무서워하는 건 꼭 언니가 범인이라고 하는 것 같잖아.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숨어야 해? 괜히 오해를 일으키지 말고 지금 다 푸는 게 낫잖아. 그렇지?"
킨조는 냉정한 그녀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언니는 이빨을 갈았지만 마땅히 받아칠 말이 없었기에 그를 들여보냈다. 그들의 집은 귀여운 곰돌이 인형과 앙증맞은 카페트가 있어, 인형의 집을 크게 키워놓은 것 같았다. 동생이 능숙하게 차를 대접했다. 킨조는 자리에 앉아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는 언니를 관찰했다.
"저희들의 소문이라면 역시 초능력일까요?"
동생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히비키와 잠깐 눈이 마주친 킨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공무 중입니다."
언니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고지식하기는…."
"히비키."
동생이 언니를 나무랐다. 곧 언니의 역정에 꼬리를 말긴 했지만.
"아…아직 저희의 이름을 모르시려나요?"
"아니요. 이미 조사를 끝냈습니다. 오토노코지 히비키 씨와 오토노코지 카나데 씨죠."
카나데가 방긋 웃었다.
"그럼 저희를 구별하실 수도 있나요?"
킨조는 잠깐 고민하다 대답했다.
"지금 저에게 질문하신 당신은 카나데 씨군요. 동생 분이시죠."
"와…역시 경찰 씨는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카나데가 긍정했다. 축 처진 눈매가 상냥하게 빛났다. 히비키는 계속 뭐가 불만인지 툴툴대기만 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것은 진짜입니까?"
킨조가 차는 손도 대지 않고 물었다. 카나데 또한 그랬다.
"알려준 사람은 역시 요미우리 오빠일까요…네. 맞아요."
카나데의 얼굴이 차의 표면에 희미하게 반사되다가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다.
"예전에 언니가 신사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어요. 저는 언니를 찾으려고 신사로 갔죠. 그리고 저희는 거기서 천호를 만났어요."
"천호?"
"네. 물론 제 추측이지만요…어둠이 도망갈 정도로 밝은 꼬리를 가진 여우라면 천호밖에 없잖아요?"
그녀는 아직 그 여우의 용모를 기억하고 있다. 몇 척은 되는 크기와 얇고 유연한 몸. 세상의 모든 빛을 품은, 세로로 갈라진 동공과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한 이빨. 천호와의 만남은 그녀의 가슴을 서늘하고 광분하게 만들었다. 너무 추억에 잠겨버려서 킨조가 헛기침을 하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여우의 눈이 분홍색으로 바뀌었을 때 저와 언니는 초능력을 얻었어요."
"잠깐만. 분홍색이 아니라 보라색이었어."
차만 홀짝이던 히비키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난 왜 넣는 거야? 초능력을 얻은 건 너 혼자잖아?"
"무슨 소리야? 나한테 그때 이후부터 나무가 잘 잘려서 장작을 준비하는 게 쉬워졌다고 자랑했었잖아?"
"카나데!!"
히비키가 비명을 질렀다. 그것만으로 이미 그녀는 약점을 드러낸 것과 마찬가지였다. 킨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왜 숨기려고 하셨죠?"
히비키는 대답하려고 하지 않았다. 도망치려는 듯 의자에서 일어났지만 카나데가 빠르게 붙잡았다.
"히비키…뭐야 그게. 내가 봐도 수상하잖아. 왜 잘못한 게 없는데 경찰을 피하는 거야? 설마 히비키가 죽였어?"
"아니야! 안 죽였어!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응. 그렇겠지. 난 히비키를 믿어. 경찰 오빠도 네가 제대로 증언한다면 이해해줄 거야. 그러니까 도망가지 말고 제대로 눈을 마주치고 말하자? 응?"
킨조는 카나데를 빤히 쳐다보다가 말을 꺼냈다.
"카나데 씨는 엄청 침착하시군요. 이런 상황인데도."
"드라마랑 영화랑 많이 봤었으니까요. 익숙하거든요."
카나데는 구김살 없는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그 웃음이 그녀를 더 괴기하게 만들었다. 그런 가짜로 면역이 될 리가 없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킨조는 요미우리의 거짓말에게 위로를 받았던 자신을 떠올렸다. 그녀도 자신처럼 허상을 유용하게 이용하는 걸까.
"히비키도 나랑 같이 봤으면 이 상황에도 동요하지 않았을 텐데…괜찮아. 이 일이 끝나면 같이 보자?"
카나데의 호의에 짓눌려 히비키가 눈물을 떨어트렸다. 쓰러지듯 앉아 얼굴을 가리고 목이 터지게 울었다. 만약 그녀가 용의자가 아니었다면 동정해버릴 정도로 서글픈 비명이었다. 그는 수사 노트를 들고 히비키를 추궁했다.
"왜 감추려고 하셨죠?"
"씨…그거야 당연하잖아요! 사람은 죽었고! 목은 그어졌고! 나는 그날부터 뭔가 나무고 벼고 잔뜩 베어버리고! 이건 그냥 대놓고 자백하라는 거랑 뭐가 달라! 가뜩이나 기억도 애매하고! 요즘 몽유병에도 걸려있고! 전부 나한테 불리한데 오빠라면 말하겠냐!"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녀가 절규했다. 그녀의 눈은 시신처럼 텅 비어있었다. 킨조는 반신반의하며 일단 그녀의 말을 전부 적었다. 카나데는 킨조가 히비키를 의심한다는 걸 알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위로했다.
"히비키. 울지 마. 히비키가 천호 덕분에 뭐든지 베어버릴 수 있게 됐지만 히비키는 겁쟁이잖아? 나는 네가 그럴 배짱이 없는 걸 알아. 아까도 말했잖아. 제대로 설명하면 경찰 오빠도 알아준다니까? 굳이 수상한 냄새를 풍겨야겠어? 언니, 진정해. 진정하라니까…."
킨조는 그녀를 구속해 서에서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심증만으로는 이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증언은 모든 것이 안개처럼 애매했다. 좀 더 알아보려면 손전등이 필요했다.
"협조 감사합니다."
킨조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결국 차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카나데가 배웅하려고 했지만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만약 용무가 생기면 또 실례하겠습니다."
"오지 마!"
히비키가 몰래 속삭였다.
"안녕히 가세요."
카나데가 문을 닫았다. 경찰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녀는 히비키의 발작이 멈췄나 보았다. 여전히 몸은 떨렸지만 둘만 남으니 알량한 자존심이 자랐는지 눈빛이 독했다. 히비키는 폭군마냥 소리쳤다.
"카나데! 정말 쓸데없는 말만 골라서 해주는구나! 언니를 감쌀 생각이 있기는 했어? 그런…그런 거짓말을 하다니 발칙해…"
그녀의 숨이 점점 가빠져갔다.
"발칙…그래…왜 거짓말을 했어? 나는 초능력…모르는데…여우인지 뭔지도 모르고…베어버리는…베어버려…벨 수 있어…?"
눈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게 마치 서커스의 룰렛이다. 히비키는 열린 입에서 침이 흐르는 것도 모르고 허공을 바라봤다. 눈썹을 찌푸리다가, 노려보다가, 응시하다가. 꼭 해골 가면 같다.
불쌍한 언니. 또 수리해야겠네.
카나데는 히비키를 안았다. 둘의 심장이 포개져 하나의 고동이 울렸다. 그들의 심장은 하나였던 걸 억지로 나눈 바람에 고장이 자주 났다. 특히 섬세한 작업을 못하는 히비키가 그랬다. 그러다보니 카나데는 자연스럽게 수리공이 됐다. 가슴을 분해해서 원인을 알아내고 그곳을 나사와 드라이버로 고친다. 농사보다 훨씬 유익한 일이었다. 카나데는 오직 자신만 고칠 수 있는 히비키가 너무 좋았다.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까져서 아파 엉엉 우는 아이를 달래듯 등을 쓸어주었다. 헐떡이던 히비키의 숨이 고요해졌다. 시계추가 똑딱이는 소리가 숨소리를 먹어버릴 정도가 되자, 카나데는 물었다.
"이제 괜찮아?"
히비키는 눈이 풀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카나데는 웃다가, 조용한 언니의 눈치를 살폈다.
"언니…? 아직 우울해?"
히비키는 고개를 저었지만 구질구질한 안색이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기운을 차릴 수 있게 만들 말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카나데는 문득 창문 너머를 보았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마른 은행잎 하나가 용케 붙어있었다. 하지만 너무 가느다래서 눈이라도 왕창 오면 곧 떨어져 썩을 것 같았다.
"언니. 방금 깨달았는데 이틀 후면 크리스마스야."
카나데가 말했다. 히비키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떨구며 투덜댔다.
"그게 뭐…도시에 있는 사람들이나 즐기지, 이런 촌구석에 무슨. 그리고 사람이 뭉텅뭉텅 죽고 있는데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을 리가…"
"언니는 분명 즐길걸. 어차피 다 잊을 테니까."
히비키는 카나데가 해맑게 웃고 있는 걸 보았다.
"잊다니?"
"언니는 이기적이니까 언니가 모르는 사람이 죽든 말든 살 거잖아? 지금도 아직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그렇게 떨지 예전 거는 다 까먹었으면서. 솔직히 말해봐. 지금이 몇 번째인지 알아?"
컵 하나가 떨어져서 깨졌다. 카나데는 그것을 치우러 갔다. 베이지 않게 조심해서 잔해를 주웠다. 아마 5분 정도 걸렸을 것이다. 카나데는 우두커니 서있는 히비키에게로 돌아갔다.
"기억이 나?"
히비키의 볼이 눈물과 콧물로 더러워졌다.
"안 나. 난 분명 이번이 첫 번째라고 생각했어. 재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히비키의 눈은 필라멘트가 끊어져서 불이 켜지지 않는 전등을 바라봤다.
"카나데. 내가 좀 미친 걸까? 네가 말하는 거랑 나의 기억이 전혀 맞지 않아. 마치 퍼즐을 부셨다가 다시 맞추는데 하나도 맞물리지 않는 기분이야. 어렸을 때는 이러지 않았지? 아니야? 대답해줘. 카나데. 저기, 카나데? 카나데?!"
겨우 고쳤는데 또 부셔졌다. 히비키가 머리를 부여잡고 마구 울었다. 마치 두통에 시달리는 환자처럼. 카나데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번에는 손을 맞잡아줬다. 할퀴어대는 손가락의 마디 하나하나를 느끼면서 카나데는 속삭였다.
킨조는 그 사이 신사로 가고 있었다. 두 번째 시신이 발견된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히비키와 카나데의 말을 확인해보겠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그는 아직도 그들의 말을 반신반의했다. 신사는 이제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낡아버린 유적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영험한 기운이나 거대한 여우는 볼 수 없었다.
"역시 거짓말이었나."
그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내려왔다. 요미우리가 그를 보고 강아지처럼 달려왔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신사에 다녀왔습니다."
"엥? 거긴 왜요? 3년 전부터 아무도 안 가는 곳인데."
새롭게 정보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3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저도 쿠로카와한테 들은 거라…쿠로카와한테 가보는 게 어떠세요? 쿠로카와의 집은 고추밭 옆의 주황색 지붕이에요."
그가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킨조는 또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 깊이 감사를 표했다. 확실히 요미우리가 말한 대로 고추밭 바로 옆에 눈에 띄는 주황색이 있었다. 노크를 하고 한참 기다리니 문이 조금 열렸다. 틈새 사이로 검은색 눈이 킨조를 살펴보았다.
"무슨 일로?"
"신사에 대해서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쿠로카와 미카코 씨."
그녀는 2분 동안 킨조와 눈싸움을 하다가 문을 열었다. 휑한 동굴처럼 그녀의 집은 삭막하고 추웠다. 쿠로카와는 킨조가 소파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앉았다.
"두 번째 사건이 있었던 장소기도 하니 지금 질문도 수사의 관련이겠지만…혹시 쌍둥이를 용의자로 보고 있는 겁니까?"
쿠로카와가 물었다. 일반인치고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킨조는 그렇다고 말했다.
"…좋은 판단이네요. 확실히 그 둘은 수상하니까요."
"쿠로카와 씨는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쿠로카와는 머리를 묶으며 대답했다.
"네. 당신의 질문과도 관련이 있으니까요. 긴 이야기니까 노트라도 준비해주세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이미 노트를 펼치고 펜을 든 상태였다.
"…그럼 말하겠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천호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독심술을 주었고, 대신 공감 능력을 뺏었습니다."
쿠로카와는 킨조의 손이 잠깐 멈춘 것을 보고 설명을 덧붙였다.
"예를 들어서…강아지는 잡종이 많이 있습니다. 치와와와 푸들의 혼종이라던가요. 하지만 대놓고 잡종이라고 말하면 주인은 기분이 나쁠 겁니다. 대부분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게 됐습니다. 부모의 종이 다르니까 잡종이라고 부르는데 그게 왜 싫은 걸까? 이렇게 생각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군요. 여러모로 살기 불편하겠습니다."
킨조의 말을 듣고 쿠로카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예전의 기억을 살려서 사회생활에 불편함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어르신께 여쭤보니 천호의 꼬리에는 신통력이 있어서 자신을 발견한 사람에게 그 자가 가장 필요한 초능력을 하나 나눠준다고 하셨습니다. 농부의 경우엔 날씨를 조종하는 힘이라던가요."
킨조는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정말로 믿어야 하나 고민했다. 쿠로카와는 그를 꿰뚫어보았다.
"직접 보지 않았으니 당신이 의심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다만 3년 전까지만 해도 천호는 이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이었습니다."
"3년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킨조가 조금 초조하게 물었다. 쿠로카와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침착하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천호를 잊어버렸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수없이 떠돌던 소문이 모습을 감췄고 신사는 폐허가 됐습니다. 저는 그것이 이상해서 나름 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쌍둥이가 수상하다고 느꼈죠. 왜냐하면 제 독심술이 쌍둥이에게 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통했었는데, 마치 거대한 보아뱀이 저를 거부하는 것 같았습니다."
킨조는 지금까지 적은 내용을 봤다. 아무도 수사 일지라고 믿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 긴 이야기를 해준 쿠로카와에게 감사를 전했다.
"…경찰들은 미신을 믿지 않죠."
쿠로카와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의지하는 게 좋을 거예요. 동기도 괴상하니까…."
킨조는 쿠로카와의 집에서 나왔다. 일단 서로 돌아가 지금까지 들었던 증언을 정리했다. 그건 꼭 늪처럼 보였다. 죽처럼 질척질척한 사건들은 아무리 애써도 묽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오컬트 쪽으로 빠져버린 사건을 보며 킨조는 차라리 영매사나 불러올까 생각했다.
그는 예전 사건의 파일도 살펴봤다. 피해자들은 어떤 공통점도 없었고, 발견 장소도 그냥 의미 없이 버린 것에 가까웠다. 유일하게 연쇄 살인으로 의심할 부분은 사인 뿐. 하지만 목을 잘라버리는 흉기는 마을 전체를 뒤져도 찾을 수 없었다. 킨조는 히비키의 초능력을 잠깐 떠올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소설에도 나오지 않은가. 초자연현상은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하아…."
결국 밤을 꼴딱 샜다. 졸린 눈을 비비고 현장으로 향했다. 또 미제로 남겨버릴 수 없다는 강박이 그를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수구를 뒤지고 있는데 요미우리가 그를 불렀다. 당황한 부하들이 그를 막으려고 했다. 킨조가 그들을 말렸다.
"요미우리 씨. 여기는 현장 근처입니다. 모르고 하셨겠지만…주의해주세요."
요미우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킨조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너무 졸려서 그런가, 갑자기 그가 녹아내리는 눈사람으로 보였다.
"정말인가요? 죄송합니다! 그럼 다른 곳에서 얘기해도 괜찮나요?"
요미우리는 킨조를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그의 집에는 책이 많았다. 먼지도 좀 쌓여있었다. 킨조가 기침을 하는 동안 요미우리는 문을 잠그고 커튼을 쳤고 불을 껐다. 킨조는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알아채고 숨을 죽였다.
"경찰 씨. …제가 실종자를 한 명 찾았어요."
킨조는 깜짝 놀랐다. 이미 자신도 다른 부하들도 실종자들은 죽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경찰조차 생사 확인을 포기하고 체념했는데 결국 찾아낸 신문 기자의 끈기에 킨조는 고결함을 느꼈다. 그에게는 더없이 맑은 인간의 존엄이 가득 차있었다.
"하지만…그, …죽어있어서…경찰 씨한테…장소를…."
요미우리는 안색이 창백해져 말을 더듬었다. 킨조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연신 그를 달랬다. 요미우리는 귀를 가까이 대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시체가 있던 골목의 위치를 알려줬다. 킨조는 잠자코 듣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왜 저를 굳이 여기 불러서 알려주시는 겁니까?"
우물거리며 요미우리는 대답했다.
"…들릴 수도 있으니까요…."
"누구에게요?"
"범인이요…."
그는 온몸이 비를 맞고 있는 버려진 강아지처럼 떨리고 있었다.
"저…조사를 너무 깊이…한 것 같아요…."
불안해하고 있다. 킨조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다섯 명을 해치운 사람에게 한 명을 더하는 것쯤이야 쉬울 거다. 킨조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의 안전은 반드시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지금부터 신변을 보호해줄 수도 있어요."
당연히 좋다고 할 줄 알았는데, 요미우리는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믿어요…? 당신이…했을 지도…"
킨조의 손이 미끄러졌다. 그는 요미우리가 그런 말을 꺼낼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요미우리가 울먹이며 더 강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아니에요…미쳤나봐…잘못 말했어요…경찰 씨는…죄송해요…"
그의 흐느낌은 넋두리마냥 길었다. 소중히 들던 노트의 귀퉁이는 찢겨있었다. 구겨진 그의 글씨는 예전의 깔끔함이 없어진 채 쓰레기로 굴러다녔다. 킨조는 그가 뭘 조사했는지 알 수 없었다. 뭘 알아냈기에 이렇게 괴로워하는지도 몰랐다. 위로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의 요미우리처럼 거짓말조차 할 수 없었다. 킨조는 끔찍한 무기력을 느꼈다. 이번 사건이 보이지 않는 미궁을 헤매는 느낌이라면, 지금 느끼는 감정은 세월을 같이 보냈던 집이 불타는 걸 지켜보는 허망함이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킨조는 요미우리를 걱정했다. 평소처럼 강아지처럼 왕왕 짖으며 웃어주기를 원했다. 그의 대책 없는 웃음이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었는지 킨조는 기억하고 있다. 비록 그는 잘 웃는 성격이 아니지만, 요미우리를 위로해줄 수만 있다면 입 근육이야 쉽게 찢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떨지 마세요. 당신의 신변은 반드시 저희들이, 아니, 제가 보호하겠습니다. 당신의 도움을 바탕으로 전 반드시 범인을 잡겠습니다. 이 마을에서 더 이상의 살인은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과연 내 서약은 그에게 제대로 전해졌을까. 요미우리가 우는 걸 멈추지 않았기에 킨조는 물어볼 수가 없었다. 송아지 모양 구름이 움직였다. 오늘은 바람이 거세다. 창문이 열려있었다면 분명 그의 머리카락이 휘날렸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직접 손을 뻗어 눈물을 닦을 수도 있었을 텐데. 머리카락에 가려진 눈이 어떤 빛을 품고 있는지 킨조는 예상할 수 없었다.
한참 뒤에 요미우리가 말했다.
"…그러면…잠시만…계속 이렇게 있어주실래요…?"
"알겠습니다."
킨조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뭇잎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요미우리의 숨소리를 들으며 계속 옆에 앉아있었다. 그는 자신의 위로로 그가 자신을 되찾기를 빌었다. 그가 해줬던 것처럼 나도 그를 돕고 싶었다. 그가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됐었기 때문에, 겨우 그거 하나만의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킨조 본인도 그가 정확히 뭘 하고 싶은지 알아낼 수 없었다. 딱 하나 단언한다면, 그냥 요미우리를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뿐이다.
"나가지 말아주세요."
갑자기 요미우리가 고개를 들고 외쳤다.
"경찰 씨. 나가면 죽어요. 분명 죽어요. 절대로 죽는다고요."
너무나도 절박했기에 농담으로 넘어갈 수도 없었다. 킨조는 그의 등을 쓸어주며 대체 무슨 이유냐고 물었다.
"처음부터 손바닥 안이었던 거야. 그래. 내 조사도 경찰들의 움직임도 이미 다 읽고 있었어. 신이니까. 응. 천호니까 당연하지. 이제 어떻게 할까? 분명 없애려고 하겠지? 지금까지의 희생자들도 전부, 분명, 다…"
그는 대답이라기보다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킨조는 딱밤을 때려서라도 그를 진정시켜야 하나 고민했다. 아무래도 그도 오토노코지 자매와 쿠로카와와 마찬가지로 천호를 사건과 연결시키다가 미쳐버린 모양이었다. 킨조는 그에게 말했다.
"천호는 없습니다. 그런 괴상망측한 전설은 없어요. 다 거짓말이라고요."
"왜 우리 마을에 신사가 있었을까요?"
요미우리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다른 마을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먹힐 일도, 그 아이가, 먹을 일도, 없었을, 텐데."
어쩔 수 없다. 킨조는 그를 안정시키려면 범인을 직접 잡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먼지구름이 잠깐 일어나다가 가라앉았다. 요미우리는 자신의 손이 텅 비었다는 걸 깨닫고, 막 문을 나서려고 하는 킨조의 다리를 잡았다.
"가지 말라니까요. 죽어요. 경찰 씨도 죽기 싫잖아요. 제발. 가지 마세요."
킨조는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경찰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지키겠다고 맹세했죠. 사건을 수사하지 않으면 범인도 잡을 수 없고, 당신을 구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요미우리는 킨조를 막으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를 막을 수 없게 만드는 결의가 킨조에게 있었다. 결국 요미우리는 킨조를 보냈다. 홀로 남아버린 방에서 그는 주저앉아 몸을 다람쥐처럼 웅크렸다. 그의 눈은 마치 뿌연 수정구슬 같았다.
"…아, 결국 가버렸어."
그는 허공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말렸는데. 경찰 오빠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네."
만약 듣는 사람이 있었다면 즉시 비명을 질렀을 정도로 징그럽고 쉬어버린 목소리였다.
"요미우리 오빠. …안됐네."
마른 웃음소리가 창문을 깨트렸다.
킨조는 달렸다. 워낙 몸을 단련해놨기 때문에 힘들지 않았다. 그는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골목 안에 쌓여있는 쓰레기의 퀴퀴한 냄새는 시체의 썩은 내를 숨기기 충분했다. 아니면 시체에게 더 이상 썩을 만한 살덩어리가 없었기 때문에 냄새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참으로 강아지가 좋아할 만한 뼈다귀였다. 킨조는 허리를 숙여 그것을 유심히 바라봤다. 저 유골이 과거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거기서 뭐하세요?"
킨조는 고개를 돌렸다. 오토노코지 카나데가 있었다. 그녀는 순진한 얼굴을 하고 그에게 다가왔다. 킨조가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왜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카나데는 말을 듣지 않고 더 가까이 왔다. 충분히 킨조 너머의 해골을 볼 수 있을 거리였다. 카나데의 안색이 잠깐 창백해졌다.
"저게 누구에요?"
카나데가 물었다. 킨조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실종됐었던 분이라는 건 틀림없습니다. 곧 감식반을 불러서 조사할 계획입니다."
"실종자라는 건 어떻게 아셨는데요?"
"요미우리 니케이 씨가 알려주셨습니다."
고개를 갸웃하고 카나데가 말했다.
"그 오빠는 해골만 보고 어떻게 알았대요?"
거대한 망치가 킨조의 머리를 내리친 것 같았다. 혀가 굳어버렸다. 킨조는 대나무처럼 뻣뻣해졌다. 카나데는 갑자기 가동을 멈춘 킨조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일단 해골이 있으니까 누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꼭 실종자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근데 요미우리 오빠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천재라서? 아니면?"
힐끗힐끗 올려다보는 눈은 마치 킨조의 얼굴을 보고 즐기는 듯 했다.
"해골이 됐다는 건 시간이 꽤 흘렀다는 소리니까…그래서 실종된 지 오래된 사람을 떠올린 걸 수도 있죠…."
"그런 걸까요. 하지만 경찰 오빠, 요미우리 오빠가 꽤 수상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 않아요? 근데 왜 감싸는 걸까?"
킨조의 입술에 피가 맺혔다.
"감싼 적 없습니다. 냉정하게 판단한 것뿐입니다."
"요미우리 오빠에게 수상한 점이 발견된다면 보통 경찰들은 그것에 대해 캐보려고 하지 않아요? 영화나 드라마에선 다 그러던데. 물론 현실과 차이가 좀 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지금의 오빠는 되게 특이해요. 사심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이에요."
경찰은 본래 말싸움에 약하던가? 명백하게 그녀의 기세에 밀리고 있다. 마치 현장에서 발각된 범인처럼, 그는 유골로부터 떨어지고 싶었다. 카나데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는 전화로도 부를 수 있는 감식반을 굳이 직접 찾아가서 부르겠다고 말하며 달렸다. 카나데가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킨조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심장이 쾅쾅 울렸다. 생전 처음으로 그는 뛰면서 지쳤다고 느꼈다. 차가운 바람이 가슴을 뚫고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총도 맞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느꼈다. 휘청거리다가 오른쪽으로 돈 순간 그는 알아챘다. 자신은 지금 요미우리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다리가 꼬여 넘어질 뻔했다. 킨조는 숨을 고르고 다시 뛰었다. 본능에게 길 안내를 맡기고, 이성에게 열심히 생각하라고 채찍질을 했다. 배신이라니. 그도 용의자 중 한 명이다. 처음 만났을 때의 수상함을 생각해봐라. 그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계속 믿었지만 실제로 그가 사건 수사에 기여한 것은 없다. 오히려 천호라던가 신사라던가 이상한 전설로 주제를 바꿔버리고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사실이다. 근데 왜 그렇게 그에게 의지했는가. 왜 그를 지키고 싶었는가. 왜 그가 선량한 피해자라고 생각했는가. 거짓말에게 위로받았으면, 그 후의 말도 죄다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않았는가. 왜 그에게 호감을 느꼈는가.
요미우리의 집에 도착한 그는 냉기를 느꼈다. 그는 문이 잠겨있지 않다는 사실도 수상하게 여기지 않고 벌컥 열어젖혔다. 분명 그의 코는 충격 때문에 마비됐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거실 중앙에 고인 피 냄새를 맡지 못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킨조는 바닥을 내려다봤다. 자신의 신발이 보였고, 금이 가있는 바닥이 보였고, 쓰러져있는 요미우리가 보였다. 킨조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바닥에 얼굴을 대고 엎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머리카락에 가려진 왼쪽 눈은 보지 못했다.
핸드폰을 잡으려고 한 손은 땀으로 번들거려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다. 킨조는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먹고 그에게 다가갔다. 피 웅덩이를 밟은 그의 신발이 더러워졌다. 방금까지 휑했던 가슴은 이제 아무 감각이 없었다. 집 안이었기에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럴까.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문득 그는 창문을 쳐다봤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새빨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카나데!"
히비키가 소리를 질렀다. 부엌에서 요리를 준비하던 카나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왜 그래?"
"선물 없어?"
히비키가 아기처럼 칭얼거렸다. 카나데는 그녀가 뭘 말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챘다.
"크리스마스 선물? 조금만 기다려."
히비키가 볼을 부풀렸다. 그녀는 카나데를 매섭게 째려봤다. 카나데는 어설프게 웃으면서도 선물을 꺼내지 않았다. 결국 히비키는 언니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떼쓰는 것을 그만뒀다. 그녀들의 집에는 히비키가 명령하고 카나데가 손수 만든 크리스마스트리가 전구에 휩싸여 빛나고 있었다. 꼭대기에 있는 별은 진짜를 따온 것 같았다.
"역시 크리스마스가 기대되지?"
카나데가 물었다. 히비키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최근 무서운 일이 많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발랄하던 목소리가 점차 가라앉았다. 히비키는 턱을 괴고 아무것도 없는 벽을 멍하니 응시했다.
"…무서운 일?"
히비키의 고개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뭔가 일이 있었나? 누가 죽었었나? 누가 없어졌었나? 내가 없어졌었나? 카나데가 없어졌었나? 카나데가 없앴었나? 카나데가…"
카나데가 그녀의 입을 막았다. 일부러 그녀의 입에 손가락까지 집어넣어서 나오려는 단어를 억지로 집어넣었다. 카나데는 한숨을 쉬었다. 히비키는 너무 자주 부서져서 탈이다. 아무리 카나데가 히비키를 수리하는 걸 보람으로 여기고 좋아한다지만, 이렇게 조금만 눈을 떼도 망가져버리는 건 그만해줬으면 좋겠다. 일일이 기억을 수정하는 것도 귀찮단 말이야. 카나데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언니. 이제 선물 줄게."
기억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다음 카나데가 말했다. 태엽이 막 꽂혀서 잠깐 멍 때리던 히비키가 웃으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짜? 어디?"
"밖에 봐봐."
히비키는 문을 열고 밖을 보는 순간 감탄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실로 어울렸다. 얼음 축제에나 있을 법한 화려한 조각상들이 마당에 우아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조각상 위로 솜털 같은 하얀 눈이 솔솔 내렸다. 히비키는 신이 나서 조각상들을 하나씩 만져봤다.
"이거 카나데가 만든 거야?"
"응. 언니를 위해서 열심히 만들었어."
"굉장하다! 이런 재주도 있었구나?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어떻게 조각했대?"
그녀는 머리카락을 손가락 끝으로 건드렸다. 그것은 인간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정교했다. 카나데는 히비키를 흐뭇하게 쳐다보다가, 계속 밖에 있으면 감기가 걸릴 수도 있으니까 들어오라고 불렀다.
"싫어! 날 위해서 만든 거라며? 그리고 겨울이 지나면 녹잖아. 그러니까 계속 볼래!"
"괜찮아. 내가 안 녹게 해줄게."
"어떻게?"
히비키가 반문했다. 카나데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히비키는 그녀의 분홍색 눈동자가 카멜레온처럼 현란하게 색을 바꾸더니, 여우의 동공처럼 세로로 찢어지는 걸 보았다. 카나데는 뒤로 넘어지는 히비키의 허리를 감쌌다.
"내가 먹은 이 여우라면 그런 것쯤이야 쉬워, 언니."
카나데는 기절한 히비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무 경계 없이 자고 있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입이라도 맞추고 싶었다. 히비키에게 홀딱 빠진 카나데는 한참 후에야 쿠로카와가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는 걸 알아챘다. 그럼에도 태연하게 히비키를 안으며 쿠로카와를 반겼다.
"무슨 일이에요?"
"그냥 지나가는 길."
쿠로카와는 조각상을 쳐다보고 눈을 깜박였다.
"멋지죠? 언니를 위해서 제가 직접 조각했어요. 힘들었다고요?"
카나데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쿠로카와는 잠깐 역겨움이 스친 표정을 지었지만 곧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언니는 눈치가 빨라서 좋아요."
쿠로카와는 카나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카나데도 딱히 답을 바란 게 아니었기에 어깨만 으쓱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방관자로 지내주세요? 약속이에요."
카나데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쿠로카와는 그걸 한참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녀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던 것처럼, 얼굴에 아무런 동요도 비추지 않은 채 길을 걸어갔다.
내리는 눈은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카나데가 원한다면 바로 태양을 드러낼 수 있었지만, 히비키는 크리스마스에 내리는 눈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눈이 멈춘 걸 깨달으면 분명 슬퍼할 것이다. 히비키는 웅얼웅얼 뭐라고 잠꼬대를 했다. 카나데는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고 제멋대로 생각하고 만족했다.
"맞다, 오빠들한테도 인사하지 않으면."
카나데는 히비키에게 이불을 곱게 덮어주고 바깥으로 나갔다. 히비키가 열심히 만졌던 조각상 앞으로 가서 허리를 꾸벅 숙였다.
"오빠들 덕분에 히비키가 엄청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얼음 조각상 위로 눈이 베일처럼 쌓였다. 카나데는 그 눈을 손으로 털었다. 히비키는 산타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 반동으로 카나데에게 지나칠 정도로 선물을 요구했다. 사탕 같은 평범한 선물은 받아도 좋아하기는커녕 오히려 울 게 뻔했다. 그래서 카나데는 고민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그녀가 만족할 만한 선물을 찾았다. 그걸 만드는 과정이 꽤 힘들었지만, 히비키의 웃음이 카나데의 그동안 노력을 보상해주었다. 히비키가 자신에게 칭찬을 해준 것만으로도, 자신이 해온 일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고 카나데는 확신했다.
카나데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히비키가 몸을 뒤척이는 걸 느꼈지만 착각이었다. 약간 눈썹을 찡그리면서도 편하게 자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다만 자고 일어난 후에 또 기억에 혼란이 생기지 않을까 카나데는 걱정스러웠다. 물론 그러면 또 고쳐버리면 그만이지만. 어쩌면 자신은 내심 히비키가 망가지는 모습이 좋은 걸지도 모른다. 여우의 힘이라면 그녀의 기억을 완전히 삭제해버리는 것도 가능할 텐데, 굳이 일부분을 남겨놓아 억지로 기억이 재생되게 만든다. 그녀 스스로도 그녀가 과연 히비키의 기억을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언니…빨리 일어나…크리스마스가 지나가버려…."
카나데는 그녀의 옆에 같이 누워 속삭였다. 도시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지내는지 배운 후부터 그녀도 도시의 사람들처럼 하고 싶었다. 데이트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고백도 하고 싶었다. 이렇게 길게 잘 줄 알았으면 최면을 걸지 않는 건데. 카나데는 그녀답지 않게, 꼭 자신의 언니처럼 투정을 부리며 언니가 깨기를 기다렸다.
"빨리 일어나…."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카나데는 고개를 갸웃하며 문을 열었다. 처음 보는 경찰이 있었다.
"누구세요?"
"사사키 코우헤이라고 합니다. 잠시 알리바이를 물어도 괜찮습니까?"
그는 마당을 잠깐 쳐다보더니 말했다.
"멋진 조각상이네요."
"감사합니다."
얼굴을 알아볼까봐 카나데는 살짝 조마조마했다. 사사키는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카나데는 몰래 혀를 찼다. 데이트는 잠깐 미뤄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어차피 얼마 안 걸리고, 크리스마스는 아직 충분히 남았으니까. 그녀는 속으로 여유를 부리며, 빨리 자신의 언니가 깨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