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펠리카
어렸을 적, 다시 말해 산타를 믿던 시절. 그때는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던 것 같았다. 류타로보다도 크리스마스를 학수고대하던 사람은 그의 누나 키요카였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는 마키 키요카의 생일이기도 했으니까. 일 년 중 가장 특별한 날 둘이 연달아 이어져 있다면 누구라도 기대하게 되는 법 아닌가.
어린 남매는 트리를 장식하며 준비하는 홈파티를 좋아했고, 가족이 다 같이 모여 먹는 케이크를 좋아했고, 그 무엇보다도 착한 아이에게 주어지는 선물을 좋아했다. 키요카의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는 언제나 크리스마스 파티와 동시에 치러졌다.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와 캐롤을 연달아 부르고, 크리스마스 케이크에는 키요카의 나이만큼 초가 꽂혀있는 게 마키 가족이 12월 24일과 12월 25일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 서로 머리를 맞대고 착한 아이가 될 방법을 궁리했던 건 유년기 두 사람만의 연례행사였다.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받기 위해 온갖 착한 일을 찾아다니고, 부모님은 뒤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두 자녀의 동심을 즐기던 나날.
그때는 아직 마키 남매가 더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가 채 몇 시간도 남지 않은 이브의 밤이었다. 키요카는 드물게도 진지한 표정을 짓고 시선을 떨어트린 채였다. 그녀가 내려다보고 있었던 건 선물상자였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부모님이 건네준 선물. 11월 26일에 류타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머리를 쓰다듬고 포옹을 나눈 뒤 전한 키요카의 생일선물이었다.
"산타는 말이야, 무지무지 바쁜 게 틀림없어."
앞뒤도 문맥도 없는 말. 혼잣말 같지만 그런 것 치곤 성량이 큰 그 말에 류타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키요카는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리카가 알려줬는데, 옆집의 유즈는 작년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못 받았다고 그랬어. 유즈는 엄마랑 아빠 사이가 나빠지는 걸 막지 못해서 자기가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나 봐. 하지만 유즈는 정말 착한 아이인 걸, 그러니 산타가 너무 바빠서 실수한 게 분명해.
애꿎은 상자의 포장만 한참을 만지작거리던 키요카는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산타가 그렇게 바쁘다면, 누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냐? 류타로는 무심코 생각난 것을 그대로 내뱉었고, 그 말을 들은 키요카의 두 눈은 갑자기 활기가 차오르듯 반짝였다. 스위치를 잘못 켰구나. 류타로가 뒤늦게 그걸 알아챘을 때 그의 양손은 이미 누나에게 꼭 붙잡혀 위아래로 붕붕 흔들리고 있었다.
"류타로, 너 사실은 천재였구나!"
그래, 그러면 되겠네. 그럼 유즈도 기뻐하고, 산타도 착한 일을 했다며 선물을 챙겨줄 게 분명해! 류타로 너도 같이 할거지? 키요카는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다시 말하자면 평소처럼 활발하게 말을 쏟아내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것 좀 놓고! 당황한 류타로의 외침을 승낙으로 받아들인 키요카는 내일 아침 직접 깨우겠다는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말이지, 완전 제멋대로인 누나라니까. 그렇게 불평한 류타로도 이내 누나가 들어간 방문을 멀거니 바라보다 제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크리스마스 당일. 동이 트기가 무섭게 키요카는 류타로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키요카가 가벼워 보이는 인상과 달리 착실한 성격이기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베어있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평소보다 이른 기상이었다. 키요카에게 억지로 흔들어 깨워진 류타로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무어라 항의 비슷한 말을 했지만, 키요카는 어린 남동생의 항의를 가볍게 흘려들었다. 류타로 네가 말했었잖아? 산타가 바쁘면 누가 도와줘야 한다고. 오늘은 우리가 산타 일을 대신하는 거야! 누나에게 끌려가던 류타로는 어젯밤에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런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키요카가 류타로를 끌고 간 곳은 그녀의 방이었다. 바닥에는 그저께까지는 볼 수 없었던 종이비행기 한 무더기가 쌓여있었다. 전부 키요카가 어젯밤 내내 접어놓은 게 분명했다. 키요카의 방에 있는 창문은 유즈키의 방에 있는 창문과 마주 보는 위치에 있었는데, 그 창문으로 종이비행기를 던져 유즈키를 몰래 불러낸다는 어린아이다운 발상에서 나온 작전이었다.
어린 남매가 던진 종이비행기는 차가운 겨울 공기를 가르고 닫혀있는 창문에 부딪혔다. 단순히 던져서 맞추는 일만 반복하는 거라면 내가 거들 필요는 없었을 텐데, 훗날 초고교급 저격수로 불리게 되는 누나를 본 류타로의 생각이었다. 산타에게 선물을 받기 위한 일이니까, 자신의 동생도 함께해야 한다며 나름 그를 챙겨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버릇 때문에 종종 곤혹을 치르는 것과 달리, 실은 속이 깊은 사람이라는 걸 떠올리면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키요카…? 무슨 일이야?"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막 잠이 깬 걸까, 갈색 단발의 여자아이가 창문을 열고 비몽사몽한 목소리를 냈다. 그 얼굴을 본 키요카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려는 것처럼 팔을 힘차게 흔들었다. 유즈! 애칭이 불린 여자아이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즈, 지금 잠깐만 밖으로 나올 수 있어? 나랑 류타로가 전해줄 게 있어서 그래!"
"응? 지금 당장?"
"그래! 아, 가능하다면 부모님 몰래 빠져나와야 해! 이건 비밀이니까!"
여전히 어리둥절한 유즈키를 뒤로, 키요카는 말을 마치자마자 방 한구석에 밀어둔 상자를 집어 들었다. 키요카의 생일선물인데도, 생일이 다 지나도록 포장을 풀지 않은 새것이었다. 그것을 얼떨떨해하는 류타로에게 덥석 안겨주고, 그를 끌고 나오다시피 한 키요카는 집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유즈키와 마주칠 수 있었다.
"유즈!"
"키요카. 이른 아침에 무슨 일이야?"
"사실은 말이야, 우리가 전해줄 게 있거든! 자, 받아!"
류타로가 멈칫하며 무언가 말하려던 걸 입가에 검지를 대는 손짓으로 제지하고, 키요카는 그와 함께 상자를 유즈키에게 건넸다. 어딘가 멍해 보이는 유즈키의 표정, 그 앞에서 키요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산타가 크리스마스에 너무 바빠서, 유즈한테 대신 전해달라고 우리한테 맡겨둔 거야! 착한 아이가 받는 크리스마스 선물 말이야!"
유즈키는 상자를 받아들고 두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 다 고마워! 그렇게 말하는 유즈키의 눈에는 눈물이 살짝 고여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마지막으로는 12월 25일 만의 인사를 나누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마지막까지도 뒤를 돌아보는 단발의 소녀에게 금발의 남매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하나뿐인 건데도 정말 줘버려도 괜찮은 거냐고, 류타로는 돌아오는 길에 넌지시 물어보았다. 키요카가 유즈키에게 건넨 선물은 당연히 산타가 맡긴 것 따위가 아니었다. 다른 날도 아닌 생일을 기념하는 선물이라면, 분명 갖고 싶었던 거였을 데. 게다가 케이크도 파티도 전부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기념한 키요카에게, 선물은 유일하게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온전히 따로 기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조금은 걱정하는 것처럼 묻는 동생의 손을 감싸며, 그녀는 살풋 웃으며 대답했다.
고작 하나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특별한 하나잖아? 그걸로 다 같이 웃어준다면 충분한 거야.
쉽게 이해할 수는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덧없이 밝게 웃으며 말하는 그 얼굴에는 결국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주 찾아오지 못해서 미안, 누나."
시간은 흘렀고, 두 사람은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나이를 훌쩍 넘겼다. 이른 아침부터 어딜 다녀온 거냐는 부모님의 걱정을 뒤로, 트리 밑에 나란히 놓인 선물을 보며 기뻐하던 남매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몸도 정신도 어른에 가까워질 때 즈음, 세계는 크리스마스를 평화롭게 보낼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런 절망에 잠식된 세계에서도 희망은 꺼지지 않은 채 숨 쉬고 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이 절망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이유는 희망을 나누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은 짜증나지만, 희망을 심어주는 게 특기였던 상냥한 사람처럼.
"다들 키사라기 기관 일로 바빠서, 좀처럼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어."
시신 없이 묘비만 꽂힌 빈 무덤 앞, 류타로는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누나의 몫까지 다하겠다고 한 다짐도, 절망과의 싸움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젠가, 모두가 평화롭게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날이 올 때까지는.
"생일 축하해, 누나.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