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제
J
"안녕 킨조.괜찮으면 같이 조사해도 될까?"
"물론이야.마에다가 도와주면 나야 고맙지."
오늘도 마에다 유우키는 어김없이 그를 반기며 다가왔다.
아마 아직까지도 이렇게 자신을 거리낌없이 맞을 이는 실상 그녀밖에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그렇지만 그랬기 때문에 어느새 옆에서 거리낌없이 말을 건네오는 소녀는 사실 킨조에게 있어 아직도 조금 이질적이고 어색한 존재였다. 마에다 유우키라는 동급생 소녀는 그에게 있어서는 한마디로 특이한 동급생이었다.말그대로 운으로 뽑힌다는 초고교급의 행운이라는, 그 주인처럼 이질적인 재능도 재능이었거니와,직업상 어쩔 수 없이 매번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에 익숙해져 있던 그에게는 그녀는ㅡ그래,마치 평범함을 담아놓은 사람이 존재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자.이거.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이럴 때, 킨조는 조금 감탄하고는 했다.
행운으로 뽑혀 들어 왔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재능처럼 느껴지는 행운은 상상하지 못했었는데.그만 해도 실험 차 몇번 돌려봤을 때는 쓸데없는 것만 나왔고 도대체 어디 건지도 모를 빨간 책이 나왔을때 결국 그만두고 말았던 뽑기 머신이었다.원체 운에는 무언가를 맡기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럴땐 결국 초고교급 행운은 초고교급 행운이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구나 싶어 그가 어색하게 웃자,그녀가 약간 과장되게 으쓱한 표정을 지어 보여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고 말았다.
"언제 봐도 대단하네.마에다는."
하고 말하니, 그녀 역시 대단한 건 내가 아니라 이 행운인걸,하며 평소의 페이스로 돌아와 멋쩍게 웃어버렸지만.
그 모습을 보고 순간 왠지 쿵,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원체 스스로의 감정에 민감한 편이 아니었던 그는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
마에다의 부탁에 자신이 맡은 도쿄타워의 사건 이야기를 했을 때는, 순간 스친 표정에 서린 충격을 보고 그는 결국은 이렇게 되는구나, 생각했다.
고개를 숙인 소녀를 보면서 괜찮다고,어차피 경멸할 것을 알았다고 말하자 그녀는 더듬더듬 아니라고 말했다.
역시 지금까지 보아왔던 대로 상냥하구나.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보통의 사람들은 이해 못할 이야기라는 걸 킨조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래서 그는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가치관까지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나는 여전히 킨조가 내게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해."
평범하기에 더 쉽게 물러날 거라고 생각했던 이는 오히려 자신에게 다가와 있었다.자신이 그녀조차 버릴지도 모른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을지 안 믿을 지는 자유지만,나는 끝까지 네 편으로 남을게.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어오는 이는, 전에까지의 인상이었던 평범한 동급생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실제로도 그녀는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
그렇게 마지막이 와서,
-결국 지켰잖아.약속.
-.....
-....킨조.
-알았어.알았어.
기억속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가 달랐음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
-만약에, 여기서 같이 나가면ㅡ
그 생각 하나로 불안을 삼켰기 때문이었다.
*
"슬프게도,타이라.난 마에다 유우키야."
침묵 끝에 선언하듯 말을 꺼낸 그녀는 어쩐지 의연하면서도 씁쓸하게 웃었다.
상황은 빠르게 돌아갔다.그리고 명색이 경찰임에도 그는 흐트러지고 말았다.누구보다도 믿고 싶었고, 믿었던 인물의 정체가 흑막이라는 게 밝혀지고,
기억이 돌아왔다는 그녀가 여전히 자신이 알던 그대로 남아있었다는 사실에.
그랬기 때문에 그는 그 짧은 찰나,순식간에 그녀의 뒤를 덮친 모노쿠마를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가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찢겨진 몸에서 피가 튀었다.
*
결국 소녀는 끝까지 '마에다 유우키'로서 둘 사이의 약속을 지켰다.
*
향내가 썼다.
죽음을 연상하게 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어쨌거나 그는 이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그의 마음이 어떻던지 간에 아랑곳 않고 나란히 세워 놓은 사진 앞에 놓인 향의 연기는 하늘을 타고 올라갔다.매년 거르지 않고 해오던 일이지만, 이번엔 영원히 주인이 들어가지 않을 무덤에서가 아니라, 모두가 가라앉은 키사라기 기관이 있던 그 바다 한가운데에서였다.
작은 흐느낌같은 게 희미하게 들려오긴 했으나 아무도 목놓아 울지는 않았다.
그날 그녀의 시신을 앞에 두고 괴롭다는 듯 웃던 여자가 어떻게 목숨을 꾾었는지,그리고 키사라기 얼터에고의 극적인 도움으로 빠져 나와 기관을 설립한 뒤찾아간 이에게서 들은 『진짜』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정신으로 들었는지도 몰랐다.
다만 시작조차 않고 무언가가 끝나버린 것 같은 그 기분과 죽음에 대한 후유증이 길었던 것만 기억했다.
그 일 이후 가끔, 영영 돌아오지 않는 이들은 현실 대신에 그의 꿈으로 나타나곤 했다.
그의 꿈에 찾아오는 사람은 이젠 아주 오래전처럼 느껴지는 시절의 용감했던 첫 친구일 때도 있었고,자신을 다시 일으켜준 이일 때도 있었으며,자신에게 날카롭게 일침을 남기던 이일때도 있었다.
또한 어떤날은 한없이 악몽같던 여자가 나타나기도 해서 소스라치며 깨어난 적도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마에다만은 아직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후에, 그는 어쩌면 그 애가 속내 어딘가로는 스스로의 끝을 직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재판 직전마다 손을 잡아주며 위로하던 평범하지만 용감했던 소녀는, 마지막 재판에서는 끝내 그러지 않았었다.
마치 잡으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5년이 지나자 평생을 남을 거라 생각했던 슬픔인지 원망인지,아님 허망함인지 모를 감정은 의외로 흐릿해지지도 않은 채로도 생각보다 빨리 괜찮아졌다.
ㅡ여러번 겪은 일이라서 익숙해 진 걸까.농처럼 던진 회한에 다른 친우 둘은 그저 침묵에 침묵만을 이어 붙였을 뿐이었다.
언제나의 상념에서 일렁거리는 주황빛을 발견할때마다 그는 숨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언젠가 느꼈던,당황스럽기도 하고 가끔은 자신을 자신답지 않다 느끼게도 했던 어떤 감정이 떠오를 때마다 그는 어울리지도 않게 울 것 같다고 느꼈다.
지금까지도 그는 구태여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그리고 그것이 가리키던 상대는 결국 없는 사람이었고, 딱히 지칭할 필요도 없었던 탓이라고 그 이유를 세웠다.
꿈에서라도 나왔다면 결국 기어이 그 감정을 뱉어냈을텐데, 그걸 알기라도 했는지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제법 지나 친우들에게 그 이야기를 말했을 때 그들은 그저 그녀는 괜찮을 거라고만 말했다.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사실은 타인의 만들어진 인격에 불과했다는 존재에,턱없이 짧은 시간동안 잠시 만났던 사람.
그리고 아마 자신을 포함한 세 명 외에는 아무도 모를 사람.
원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결국 자신은 그런 사람을 마음에 품었노라고, 평생 누군가에게 말할 일은 없을 것이라며 그는 실소했다.
그는 그 감정에 아직도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