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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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무슨 심한 장난인가.
코바시카와는 당황스런 표정으로 손에 든 사진을 바라보았다. 있어서는 안 되는 사진이었다. 모노쿠마가 자신을 놀리기 위해 준비한 사진이 분명했다.
애초에, 코바시카와가 이라나미와 키스하는 사진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그와 이라나미는 사귀는 사이도 아닐 텐데.
하지만 왜일까.
이 어이없는 사진이 친숙해 보이는 이유가, 대체 뭘까.
코바시카와는 그렇게, 보물을 찾았다는 기쁨도 잊어버린 채로 복도에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루...코.’
응?
‘하...히코.’
...누구야?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거야?
‘하루히코.’
눈을 떴다. 방금 전까지 들려오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뭐야, 꿈이었나. 안 그래도 배고파서 죽겠는데.”
파티장에 갇힌 지 3일째...아니, 3일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배고픔에 지쳐 쓰러지고 다시 깨고를 반복한 탓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파악할 수 없다.
“...단서. 여기서 나갈 단서를 찾던 중이었지?”
벽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걸음을 옮기려다가 주머니에서 팔랑거리며 떨어진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히코.’
그 사진, 이라나미와 키스하는 사진, 있어서는 안 될 사진, 왠지 모르게 친숙한 사진.
어째설까. 그 사진을 들어올린 순간 또 다시 환청이 들린 것은.
“...이라나미?”
배고픔에 정신이 몽롱했다. 어째선지 사진 속 이라나미와 방금 만난 이라나미가 겹쳐 보였다.
어째선지 친숙한 사진. 바라보면서도 왠지 모르게 편안해지던 사진.
난 왜 이 사진을 버리지 않았던 거지?
“...하하, 설마...”
몽롱한 머리 때문에 힘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그래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왜 이 사진을 버리지 않았는지, 왜 이라나미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이제 와서 말하기도 우습지만.
...설마 나, 이라나미를 좋아하는 걸까.
그 작은 깨달음은, 얼마 가지 않아 심장 전체를 덮을 것처럼 크게 번졌다.
감정이 심장을 전부 덮었을 때에야 나는 내가 이라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깨달았다.
나는 이라나미를 좋아했다.
...
내가 그녀의 총에 맞는 그 순간까지도.
“어서 가...이라나미.”
“그치만...그치만 코바시카와...흐어엉...”
바보 이라나미. 내가 살리고 싶었던 건 너라고 말했는데도 도무지 떠날 수가 없나 보다.
...내가 이런 의외의 면에 반한 거기도 하지만.
“코바시카와아...죽으면 안 돼여...”
아직도 날 껴안고 훌쩍이는 이라나미를 한 번 토닥였다.
“...내가 살리고 싶은 건 너야. 어서 가...넌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몇 번 훌쩍이던 이라나미는 결국 무기고를 나갔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이라나미를 부르고 싶었지만. 이라나미가 돌아가지 않을까 봐 그만두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무기고를 완전히 봉쇄해야 했다. 어떻게든 이라나미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추리를 방해해야 한다.
하지만 그 결심이 무색하게, 내딛은 다리가 순식간에 꺾였다. 출혈이 심해서 그런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떻게든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시야가 순식간에 까맣게 물든다. 곧이어 나는 까무룩 정신을 놓아버렸다.
‘하루히코?’
...응?
‘하루히코, 또 자는 거예여? 정말 못말린다니까여~’
...이라나미? 설마 돌아온 건가?
‘여친이 말을 하는데 졸다니여! 하루히코!!’
눈이 번쩍 뜨인다. 눈 앞에 잔뜩 화가 난 듯 볼을 부풀린 이라나미가 보인다.
이라나미의 뒤쪽으로 공원이 보인다. ‘기껏 놀러왔는데 여기서까지 졸면 어떡해여!’라며 화내는 목소리가 들린다.
분명 한 번도 겪은 적 없지만. 어째선지 익숙한 상황이라는 느낌이 든다.
...한 번도 겪은 적 없다?
어째서? 이라나미와 사귀기 시작한 뒤로 거의 매일같이 오던 장소였는데?
매일 함께 공원을 걸어다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경험한 적 없는 일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해버린다.
마치, 잊어버렸다가 떠올린 기억처럼.
....잊어버렸다가 떠올린 기억처럼?
“이라...미.”
처음 고백한 건 너였다. 내가 먼저 고백하려다 하도 망설이는 탓에, 네가 다짜고짜 키스부터 날렸던 게 기억났다.
“...나미.”
우리 둘은 애인이라기보단 친구에 가까울 정도였다. 사귀고 난 뒤에도 이전과 그다지 달라진 점은 없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장난이 더 늘었다는 거?
“...이라나미.”
...그래도 난 네가 좋았다.
“기억...못해서 미안해.”
‘정말이지...그래도 전 하루히코가 좋아여.’
꼭 위로하는 것처럼, 기억 속의 이라나미가 웃었다.
한쪽 손가락이 잘리고 폐에 구멍이 뚫렸다. 과다출혈로 죽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의 부상이었다.
하지만 코바시카와는 일어섰다. 비틀거리는 다리로 문을 막고, 안을 어지럽혀 밀실로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다리가 비틀거렸지만 방을 밀실로 만들기 전에는 무너질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총을 집어던진 다음, 무기 진열장에 기대앉았다. 여기까지가 한계였던 것 같다.
피를 흘린 상태에서 너무 무리했는지 시야가 뿌옇다. 손은 이제 차가워지고 있었다.
그래도 밀실은 완벽했다. 이 정도면 이라나미가 의심받을 일은 없을 거다.
...그래, 이제 된 거다.
차마 가지 못하고 뒤돌아보던 이라나미가 문득 생각났다.
마지막까지 바보 같은 녀석.
그래서 더 좋아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 바보 같은 친절함에 웃음이 났다.
문을 바라보며 미소짓던 코바시카와가 중얼거렸다.
“...좋아했어, 사츠키.”
그러니까, 날 위해서 살아줘ㅡ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담아둔 채로, 의식이 멀어져 간다...
순간 이라나미의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사랑해여, 하루히코!’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