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바다, 우리
Europa
현대 AU. 직장인 산노지. 졸업반 대학생 마에다
4월 바다는 늘 찼다. 너는 바다를 좋아했다. 바다라는 울림만 들어도 상쾌하다고 했다. 여름바다도 좋다고 했지만, 4월 바다도 좋다고 했다. 왜 굳이 4월 바다였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당신은 침묵이 버릇이고 습관이었는데. 그 습관은 예전부터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짐작했다. 내가 퇴근할 때는 내 침대가 당신 것인 것처럼 누워있었다. 당신이 그렇게 행동할 때, 나는 그냥 멀찌감치 떨어져서 당신을 지켜보다가 나오라고 했다. 싫어. 당신은 말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고.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온다고 했다. 나도 같이 가. 당신은 혼자 있는 걸 싫어했다. 따라와서 뭐하려고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당신은 대답했으나, 무시했다. 그러나 당신을 쳐내지 않았다. 쳐내어도 따라올 사람이니까. 눈을 깜빡이며 너와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옥상 문은 항상 잠겨 있는 법이 없었는데. 아마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라며. 너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헛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재떨이도 있는 걸 보니까 맞네. 당신은 주장했고. 나는 무시했다. 이런 건 무시를 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지만, 들어주면 한도 끝도 없었다. 나는 익숙하게 하얀 연기를 내뿜었고. 당신은 그걸 멍하니 지켜봤다. 손으로 연기를 내저었다. 당신이 마시면 기침하니까.
“산노지군. 나도 담배 피울까?”
“미쳤습니까.”
“왜? 산노지군도 피우니까 나도 피우고 싶어.”
“그런 생각 할 바에는 졸업 논문이나 마저 쓰시죠.”
나는 그렇게 말했고. 당신은 졸업 논문이라는 말에 응, 나 대학생이었지. 라고 대답했다. 당신은 이제 곧 졸업이었다. 10월 1일이 졸업 논문 마감일이라는 말에 당신은 괜찮다고 말했다. 사실은 나보다 늦게 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평소처럼 야행성, 불면증의 이유가 아니었다. 논문.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사실 직장인인 나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공감도 쉬이 할 수 없었다. 당신에게는 중요한 것이겠지.
이런 게 공감이구나.
사실 내 인생에는 공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해야만 했다. 부모, 형제, 그리고 친구. 내게는 다 사전 속에 있는 단어나 마찬가지다. 남의 의견에 공감하는 것도. 겉으로만 그런 척을 할 뿐.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인생도 살기가 바빴다. 열악했다. 언제 이 안정된 삶의 틀이 무너질 것만 같아서. 눈을 깜빡였다. 내 옆에는 언제나 당신이 있었다. 이 당신도. 언젠가는 사라질 연이었다. 그것을 안다. 당신은 내 옆에 있을 사람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사람이다. 왜 굳이 나에게 온 거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당신을 봤고. 당신은 일찍 자라고 했다. 당신은요. 내일 쉬는 날인데? 그래도. 많이 늦었어요. 알았어. 그리고 우리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우리는 가령 완전함과는 거리가 꽤 멀었다. 아니, 우리보다는 나라는 말이 더 나은 것 같다. 정정한다. 정정함에서는 완벽했으나. 다른 곳에서 나사가 한 개쯤은 빠져있었다. 그것보다 더 많이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다른 곳에서. 나사가 빠져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당신은 외로운 아이였다. 지금도 아이라고 하면, 분명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아이, 처음 당신과 내가 시선을 맞추었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 동그란 눈으로. 나 기숙사 떨어졌어. 라고 말하는 게. 꼭 나랑 같이 살아줘.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고. 당신은 우리 집에서 살아도 되냐고 물어봤다. 알았어요. 나는 대답했다. 친척 집이 멀다고 했으니, 마땅한 방편도 없을 것이고.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우리는 동거했다. 그리고 그 날이 멀지 않았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미뤄졌으면 좋겠다. 꽤 모순된 생각을 또. 모순인지 모를 생각이 이어지면, 곧 당신의 졸업식이다. 꼭 오라는 당신의 말과 함께. 당신의 졸업식장에 들어섰고. 당신을 쉽게 알아볼 수는 없었다. 다 비슷한 옷이었으니까. 그래도 그나마 확 튀는 머리카락 색 때문에 그나마 당신을 알아봤고. 당신은 손을 흔들었다. 옆에, 당신과 닮은 부모님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마에다 친구? 같이 사진 찍을래?”
언제 당신은 나를 친구로 소개했을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역시 당신과 나의 관계는 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될 수 없는 것 같아서. 연인 같은 건, 아직은. 나는 고백도 하지 못하는구나. 내 비밀로만 남겨야 했구나.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는 어설픈 친구 흉내를 낸다. 그렇게 흉내를 잘 내면 우리는 쭈뼛거리다 손을 맞잡는다. 부모님이 떠나면 우리는 숨을 내뱉는다. 이제 숨통이 트이는 거다.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싶어서.
우리는 4월 바다를 원했다. 내가 처음에 원했던 것은 이게 아닌데. 점차 우리는 닮아가고 있었다. 나하고 당신은 정녕 인연인가. 그런가 싶었기에.
“산노지군”
“왜요.”
“4월에 바다 가고 싶어.”
집에 같이 살 때도 그랬다. 4월하면 바다가 생각난다고. 여름에는 피서객들이 모여서 싫다고. 4월에 바다가 개장을 하기는 해요? 나는 퉁명스럽게 물었고. 당신은 그냥 바다만 봐도 좋은걸. 이라 답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내 옆에서 그 말을 했다. 왜 굳이 내게 말하는 것일까.
“당신과 같이 가고 싶어.”
고백치고는 90년대 청춘 드라마에서나 나올 고백이다. 눈은 그치지 않았다. 머쓱한 듯 당신은 토끼처럼 눈을 뜨고 눈을 바라보았다. 꼭 저럴 때마다. 한 마리 강아지를 키우는 기분이 들었다. 붉게 찬 손을 당신은 호호 불며 자기 손을 꼭 잡았다.
동정심이 아니었던, 안쓰러움.
당신의 손을 잡았다. 손을 잡고 싶은 욕망에 가까웠다. 당신은 당황하지 않았고. 나도 당황하지 않았다.
눈이 걸음을 지워준다 해도, 우리 마음속에 걸은 자국은 남아 있기를. 그래서 4월의 바다를 꼭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