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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난 기적

코토네

종교 AU

악마 오오토리 X 신 마에다

 

오늘 나는 또 사람을 죽였다. 그 사람은 아들 한 명과 부인과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이었으며, 음주운전을 하다 실수로 학생을 치고 도망친 인물이었다. 차에 치인 학생은 불행히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졌고, 뺑소니를 용서하지 못한 그의 가족은 빌었다. 부디 자신의 아이를 저렇게 만든 자를 없애달라고. 악마는 그런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뺑소니를 하고 도망친 한 가족의 가장을 죽였다. 잘못했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을 테니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울부짖던 목소리는 불에 새카맣게 타서 사라졌다. 나는 떨리는 손을 붙잡고 토가 나올 것 같은 입을 억지로 막았다. 지금까지 수천 번 넘게 이 일을 해왔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다. 어느새 내 옆에는 메카루가 음료수를 들고 등을 쓰다듬고 있었다.

“수고했어.”

메카루한테 칭찬을 들었지만 기분은 전혀 좋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음료수를 받았다. 뚜껑을 열 수 없어 메카루가 한심해하며 대신 열어주었다. 별로 목마르진 않았지만, 마치 마라톤을 방금 하고 온 사람인마냥 허겁지겁 들이켰다. 잘못해서 음료수가 폐로 넘어갈 뻔했다. 메카루는 내가 음료수를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가 병을 버리고 오자 내 손을 잡고 마계로 돌아갔다. 그녀에게 끌려가면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죽인 사람의 시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계에 도착하자 킨조가 마중을 나왔다. 그는 나를 장하다는 듯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아침 내내 정리한 머리가 헝클어졌다.

“처리 속도가 빨라졌는데? 제법이야!”

그는 평소에는 잘 짓지도 않는 환한 웃음을 보였다. 킨조는 평소에는 인상을 쓰고 있을 때가 많지만, 이렇게 즐겁게 웃을 때가 딱 한 번 있다. 범죄자를 죽일 때. 그때만큼은 세상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쾌감을 느낀다고 나에게 자랑스럽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전혀 이해가지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악마의 주 임무는 인간들이 사주하는 상대를 죽이는 것. 보통 인간들의 처벌은 법에 맡겨지지만, 법이 너무 약하다고 판단하거나 너무 증오스러워서 그것만으로 분이 풀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악마에게 소원을 빈다. 그럼 악마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 말로만 들으면 좋은 일처럼 생각되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킨조는 우리들이 하는 일을 정의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을 단순히 부탁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이는 우리야말로 악이 아니면 무엇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잘못되었으니까 우리는 악마로 불리는 것이 아닌가. 일생의 전부를 저주하고 모함하고 원망하고 죽이는 데 쓸 수밖에 없는 내가 싫었다. 악마가 싫었다.

“메카루. 방금 돌아와서 정말 미안하긴 한데, 또 누군가 소원을 빌었어.”

“또?! 네가 가면 되잖아, 왜 나한테…”

멋쩍게 웃는 킨조와 짜증내면서도 그 의뢰를 받아들이는 메카루를 뒤로 하고 나는 내 방으로 걸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그고 이불을 아무렇게나 뒤집어쓰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 내가 죽인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벌을 받으면, 예를 들어 치료비 빛 손해배상금을 물거나 감옥에 갇히게 된다거나하면 남은 가족들의 생계가 걱정되어 자수를 망설이고 있었다. 깨끗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 더러운 사람도 아니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설득해서 마음을 고쳐먹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문답무용으로 그 사람을 죽였다. 악마는 죽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 한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구역질이 난다.

“오오토리 씨. …방금 돌아오셨는데 죄송하지만…”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증오하기에 살인을 계속 사주하는 걸까. 나는 금방 나간다고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내 대답하고 문을 열었다.

 

기분이 울적하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특히 더 심했다. 오늘 내가 죽인 사람은 열여덟 살 고등학생이었다. 친구관계도 나쁘지 않았고 성적도 나쁘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런 애를 죽여 달라고 빈 사람은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유도 하찮았다. 걔가 자신과 친구를 해주지 않는다. 그게 전부였다. 겨우 그 이유 때문에 그 학생은 내 저주를 받고 사흘 내내 피를 토하다가 말라죽었다. 지금까지 느꼈던 죄책감의 곱절은 되는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차라리 죽일 거였다면 사주한 그 더러운 학생을 죽였어야 했다. 하지만 죽일 수 없었다. 악마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부탁받은 사람. 그 외의 사람에게는 어떠한 짓도 할 수 없다. 증오스러웠다. 정작 죽여야 하는 놈은 죽이지 못하는 살인자라니. 나는 주먹이 까져 피가 흐를 때까지 나무를 미친 듯이 때렸다. 눈물과 콧물이 내 입으로 들어갔다. 짰다.

목이 쉬어서 더 이상 욕도 내뱉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나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피부가 온통 까지고 헐거워진 주먹에는 피가 맺혀있었다. 돌아가야 하는데. 하지만 돌아간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지지도 않는다. 킨조는 학생이 얼마나 선량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누군가에게 원망을 받을 짓을 했다는 것에만 집중하여 그 애를 나쁜 놈이라고 매도할 거고, 메카루는 킨조처럼 극단적이진 않겠지만 그녀 역시 악마의 일에 충실하게 임하기 때문에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마계에 가봤자 오히려 기분이 더 우울해질게 분명하다. 나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서성거렸다.

주먹의 상처가 살짝 아물었을 무렵 내 머리 위로 새가 울면서 날아갔다. 나는 무심코 그것을 쫓아갔다. 새는 숲 중심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새를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나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따뜻하고 부드러워, 마치 세상 모든 것을 쓰다듬는 기분이 들었다. 꽃들은 형형색색의 색깔을 뽐내며 빛났고 나무는 점점 건장해졌다. 싱그러운 풀냄새가 코를 찔렀다. 새는 신나게 울더니 바위에 앉아있는 누군가를 향해 내려갔다. 나는 발을 멈추었다. 바위에 앉아있는 사람 주위에는 수많은 동물이 있었다. 육식동물 초식동물 상관없이 그 사람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목하게 지내고 있었다. 나는 숨을 멈췄다. 지금도 느끼고 있는 신성한 기운이 저 사람에게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람은 사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주위는 모든 것이 행복해보여서 나도 끼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조금만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싶다, 그런 안일한 생각에 발을 움직였다가 그만 나뭇가지를 밟고 말았다.

내 소리를 듣고 그가 고개를 돌렸다. 맑은 눈이 내 눈과 마주쳤다. 그냥 도망치기에는 이상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눈을 마주치고 있기에도 어정쩡하다.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깬 사람은 그였다. 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 곳에서 뭐하고 있어요? 다리 안 아파요? 이리 와서 앉아요.”

나는 잠시 멍하다가 그 사람의 재촉에 조심스럽게 가까이 갔다. 머뭇거리는 나를 그는 웃으며 아무런 망설임이 없이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손뿐만이 아니라 내 모든 것을 따뜻함으로 채워주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그 사람 가까이에 앉자 그때까지 화목하게 지내던 동물들은 갑자기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경계했다. 나는 놀랬지만 그는 오히려 동물들을 한 마리씩 전부 쓰다듬으면서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경계하지 마. 악마 씨가 놀라잖아?”

동물들은 천천히 경계를 멈추고 평소로 돌아왔지만 나는 그가 뱉은 말에 놀라 평정심을 잃어버렸다. 내가 악마인 걸 알고 있었어? 그런데 왜 나를 부른 거야? 왜 내 손을 잡은 거야?

“…왜?”

내가 겨우 목소리를 짜내 묻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요?”

“…언제부터 내가 악마인 걸 알았어?”

“보자마자요. 이래봬도 신이라고요.”

그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나는 그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가 뭐 때문에 놀라고 있는지 그는 전부 다 읽고 있는 듯 말을 꺼냈다.

“악마인 걸 알면서도 불러서 놀란 거예요? 저는 그런 거에 연연하지 않아요. 저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니까요. 모든 사람에서 악마만 빠져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는 장난스럽게 내 이마를 툭 쳤다. 그가 건드린 부분부터 얼굴 전체가 새빨개졌다. 모든 생명체에게 공평하게 베푸는 자애. 눈앞의 어려보이는 그가 정말로 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잡은 손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약간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누군가가 손을 잡고 끌어준 것은 처음이었기에 놀라면서도 기뻤다. 마치 나의 죄마저 끌어안아주고 용서해주는 기분이었다.

“악마 씨는 이름이 뭐예요?”

신은 천진난만하게 내 팔을 잡으며 물어보았다. 내 이름을 말해주자 그는 내 이름을 계속 반복하며 말했다. 맑고 귀여운 목소리로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 있자니 굉장히 부끄러웠다.

“너는 이름이 뭐야? 나만 알려주면 불공평하잖아.”

부끄러운 나머지 쓸데없는 말까지 해버렸다. 신에게 무슨 말버릇이냐. 나중에야 내 잘못을 깨닫고 사과하려고 했지만 그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사과를 하려고 하냐며 웃었다.

“제 이름은 마에다예요. 마에다 유우키.”

마에다 유우키. 평범하면서도 강인한 이름이었다. 마에다가 내 이름을 반복해서 부른 것처럼 나도 그의 이름을 반복해서 되새겨보았다. 그를 부를수록 가슴이 간지러웠다. 한참을 부르고 있으니 갑자기 그가 얼굴을 가까이 했다.

“이제 제 이름 외웠어요? 저도 외웠어요! 오오토리 씨!”

그는 엄청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 토끼처럼 몸을 흔들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자 그는 기쁜 듯 웃었고 근처에서 빨갛고 작은 꽃이 송골송골 피어났다.

한참을 그의 옆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슬금슬금 사라지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산이 불타는 착각이 들었다. 더 늦으면 킨조와 메카루에게 혼날 지도. 사실 가기 싫었지만 일도 안하고 땡땡이를 치고 있다는 게 들키면 잔소리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나는 바위에서 일어났고 그걸 알아챈 마에다는 이제 갈 시간이냐며 날 배웅했다.

“또 올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마에다는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웃으며 손을 저었다. 가기 싫다. 내 다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느리게 움직였고 내 고개는 일 초에 한 번씩 뒤를 돌아보았다. 계속 그러는 내가 보기 싫증이 날 텐데도 그는 바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계속해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역시 신이다. 상처는 이제 완전히 아물어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일이 기대되었다.

 

사람을 죽이는 게 끝이었던 일상에 마에다를 만나는 일이 추가되었다. 마에다는 낮이든 밤이든 같은 곳에 있었고,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그의 옆에는 언제나 동물들이 많았고, 심지어 식물조차 그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의 옆에 생명을 죽이는 내가 있어도 되는 걸까 의문을 가질 때가 많았지만,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기에 나는 항상 그를 찾아갔다. 그의 옆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게 가장 행복했다. 그는 자신이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자주 했다. 차에 치일 뻔했던 꼬마를 구해줬다거나, 폐휴지를 모으고 다니는 할머니께서 오르막길을 올라가지 못해서 도와준 이야기라든가, 농사를 망쳐서 우는 농부를 위해 잠시 술수를 부려서 농작물을 늘려줬다던가.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과는 전혀 정반대의 일들. 그걸 들으면서 잠시 잊었던 죄책감이 다시 심장을 긁었다.

애초에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지금까지 죽인 사람 수만 몇 백 명이 넘는다. 근데 바보같이 잊고 있었다니 나는 어디까지 쓰레기란 말이냐. 죽이는 거에 그치지 않고 기억에서 지워버리기까지 하다니. 주체할 수 없이 식은땀이 흘렀다. 마에다와 가까이 있으면 안 돼. 마에다까지 더러워질 거야.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내 손을 마에다가 덥석 잡았다.

“오오토리 씨는 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내요?”

저 말은 마치 사형선고라도 된 마냥 내 귀를 억지로 찢었다.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고 싶었지만 마에다는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들으면 넌 나를 싫어하게 될 텐데.”

난 네가 가장 싫어하는 일만 골라서 하니까.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마에다는 여전히 듣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

“제가 오오토리 씨를 싫어하게 될 리가 없잖아요?”

그는 항상 이렇다. 항상 모두를 사랑하고 아끼고 모든 것을 감싸주고 포용한다. 그와 같이 있으면 내가 저지른 모든 짓이 용서받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나는…”

결국 털어놓고 말았다. 지금까지 내가 저주해서 죽인 모두의 이름을 한 명씩 다 마에다에게 말했다. 마에다를 만나기 바로 직전 죽인 아무 죄도 없던 고등학생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려고 했는데. 이름을 대면서 점차 코끝이 찡해지더니 막판에는 말과 울음이 분간이 안 갈 정도로 흐느끼고 말았다. 네가 죽였잖아. 그런 주제에 불쌍한 척 울지 마. 멀리서 그들의 원망에 찬 시선이 느껴졌다. 분명 마에다도 똑같이 날 보고 있겠지. 아무리 신이라도 이건 용서하지 못할 테니까. 그를 바라보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아서 겨우 고개를 들어 눈을 떠보았다.

마에다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내가 죽인 사람들의 이름을 말하며 그들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마에다가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다른 것보다 그게 가장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내가 과연 위로해줄 자격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는 마에다를 그저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부디 좋은 곳에 가기를….”

마에다는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그 눈물은 반딧불이와 같이 예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먼저 한 난 분명 미친놈이다. 마에다는 코를 훌쩍이며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눈물 때문에 촉촉해진 그 손으로 나를 껴안았다.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마에다?! 잠깐, 왜 그래?”

내가 놓아달라고 소리를 질러도 마에다는 오히려 나를 더 껴안을 뿐이었다. 나는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살인자다. 마에다가 사랑하는 자들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 삶의 전부인 쓰레기다. 이런 나를 왜 껴안고 있는 거야. 떨어져. 나는 너를 타락시키고 싶지 않아.

“봐. 역시나.”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이상한 소리를 내니까 마에다는 고개를 들었다.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동안 계속 괴로우셨으면서,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그 괴로움을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하셨네요. 오오토리 씨답네요.”

그가 꺼낸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조금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확신했다. 마에다가 나를 원망할 거라고. 왜냐하면 나는 마에다가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하니까. 겨우 가졌던 희망이 없어질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고 받아들일 준비도 이미 끝나있었다. 근데 지금 마에다는 뭐라고 말한 거지. 그의 말 어디에도 나를 싫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게 이상했다. 마에다의 팔이 내 등에서 떨어졌다. 그의 작은 손은 이제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난로라도 튼 듯 따뜻함이 정수리부터 퍼졌다.

“알 수 있어요. 하기 싫은 일이었죠? 근데 그렇게 태어나버렸으니까, 따를 수밖에 없으니까 지금까지 억지로 해왔던 거죠? 그게 분하고 억울한데, 자신은 억울하다고 말할 자격이 없으니까 계속 속에서만 앓아왔죠?”

독심술이라도 쓴 걸까. 마에다는 나를 바늘로 계속 쿡쿡 찔렀다. 가슴이 찌릿하고 아파왔다.

“여기는 저 빼고 아무도 없어요. 당신을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마음껏 털어놓으셔도 괜찮아요. 싫어요? 알겠다. 제가 오오토리 씨를 싫어할까봐 무서웠죠? 그래서 제대로 말도 못했죠? 하지만 괜찮아요. 제가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설령 오오토리 씨가 악마에 범죄자라고 해도 저는 당신을 좋아하니까요.”

부탁이니까 그만해줘. 그 이상 따뜻한 말을 들어버리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돼버려.

“처음 만났을 때 확실히 말했는데. 저는 다 좋아한다고. 저는 신뢰가지 않는 신인가요? 조금 실망이에요. 그럼 지금 제 말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하면 되겠네요.”

마에다는 내 무릎에 머리를 기댔다. 약한 바람이 내 뺨을 스치고 그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다가 사라졌다. 그는 내 무릎이 푹신한 배게라도 되는 듯 행복한 표정을 했다.

“따뜻하네요.”

그가 해실거리며 말했다. 따뜻한 건 너야.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눈물이 나왔다.

“또 울어요? 오오토리 씨는 정말 울보세요.”

괜찮다고 내 볼을 닦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악마를 제외하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기뻤다. 눈물이 멈출 때야 자각했다. 나는 정말 가능성이 없는 사랑을 시작해버리고 말았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하필 너일까.

“고마워, 마에다.”

그리고 미안해.

 

오늘 날 반겨준 동물은 조그마한 토끼였다. 작고 앙증맞은 코를 내 손에 비비었다. 토끼의 뒤에는 마에다가 처음 보는 꽃의 향기를 맡고 있었다.

“안녕.”

내가 말을 걸자 그는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이것이 최근 내 일상. 마계로 돌아가는 날이 줄고 외박을 하는 날이 늘어났다. 킨조와 메카루가 그것 때문에 골치를 앓는 날이 많아졌고 나도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는 있지만, 마계에 돌아가면 갑갑함에 죽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 살육에 거리낌이 없는 그곳에 있으면 머리가 돌 것 같았고, 마에다와 함께 있기 위해서라면 조금이라도 덜 더러워야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악마는 이런 걸 먹나보네요. 저도 먹어도 되나요?”

“안 돼. 신인 네가 이걸 먹으면 구역질로 끝나지는 않을걸.”

마에다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궜다. 그런 귀여운 고양이 같은 표정은 치사하잖아. 마음이 흔들릴 뻔했지만 신이 악마의 음식을 먹는다는 건 곧 강아지한테 초콜릿을 먹이는 것과 같으므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이건 괜찮을 거야.”

나는 주머니에서 조각 하나를 꺼냈다. 마에다는 그것을 손에 쥐고 태양에 비춰보았다. 빨간 빛이 마에다의 눈과 만나 더욱 환하게 빛났다.

“이건 뭐예요?”

“루비라고 인간들의 보석 중 하나래. …물론 훔쳐온 건 아니야! 제대로 내 방에 있던 걸 가져온 거야.”

마에다는 루비를 양손에 번갈아가면서 만져보기도 하고, 던져보기도 하고, 동물들에게 줘보기도 하면서 그 나름대로 그걸 가지고 재미있게 놀았다. 악마나 인간이라면 저것을 갖기 위한 쟁탈전이 일어났을 것이다. 지금 마에다의 다리 위에 올려져있는 저 루비만 해도 가지기 위해 얼마나 거친 싸움이 일어났었는지 나는 아직도 그때가 눈에 선하다.

“그럼 귀한 거잖아요?”

어느새 내 마음을 읽은 마에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힘들게 얻은 소중한 물건인데 저한테 줘도 되는 건가요?”

“괜찮아. 마에다한테 꼭 주고 싶었어.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거든. 루비도 마에다도 붉으니까.”

실제로 루비는 제 주인을 찾은 듯 지금까지는 본 적 없는 아름다운 빛을 뿜고 있었다. 역시 어울려. 그렇게 말해주자 마에다는 잠시 가만히 있더니 루비를 내려놓고 호수에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 담긴 물은 은하수라도 품은 건지 은은하게 빛났다. 그것은 비눗방울처럼 둥그렇게 하늘로 뜨더니 내 손으로 내려왔다.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것은 조그맣게 압축되더니 하나의 작은 알갱이가 되었다.

“보답이에요!”

“괜찮은데…”

“받기만 할 수는 없잖아요.”

답례를 바란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 당황했지만 마에다가 내 선물을 기뻐해주고 받아줬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내 손에 들려있는 알갱이는 마에다처럼 아름답게 빛났다.

“뭐하는데 쓰는 거야?”

“용도는 없어요. 굳이 표현하자면…장식품?”

메카루의 말을 빌려 쓰자면, 자리만 차지하는 쓸모없는 쓰레기. 하지만 나에게는 어떤 값진 보석보다도 소중한 보물이었다. 마에다에게 처음 받은 선물. 그것만으로 나에게 1등이었다.

“고마워.”

활짝 웃고 마에다를 보자, 마에다는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묘하게 초조한 모습에 마치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철부지 초등학생과 비슷해보였다.

“왜 그래?”

오래 만났음에도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어서 호기심이 솟았다. 마에다는 그답지 않게 놀라더니 움츠러들었다. 도토리를 한껏 입에 물던 다람쥐도 그의 행동에 걱정하며 다가왔다. 마에다는 다람쥐를 부드럽게 껴안으며, 동시에 자신의 얼굴을 감췄다.

“…누군가한테 사랑을 받는 건 처음이어서요.”

이해를 하지 못하고 반문하자 그는 지금 그가 안고 있는 다람쥐처럼 볼을 부풀렸다.

“그러니까, 누군가한테 사랑을 받는 게 처음이어서 신기하다고요. 저는 신이니까, 모두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돌아오는 경우는 별로 없거든요. 왜냐하면 신의 사랑은 인간들끼리 하는 주고받는 사랑과 다른 차원에 있으니까. 베풀어주는 것에 익숙했으니까 지금까지 몰랐는데…제가 베푼 사랑이 더 후하게 돌아오는…경험은 처음 겪어봐서요. 이런 기분은 처음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마에다의 얼굴은, 첫사랑을 하는 고등학생이었다. 거울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아마 지금 내 얼굴도 마에다와 똑같을 것 같았다.

“마에다…방금 그건…”

“아니에요!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그저…처음이라서…”

그는 내가 자신을 놀린 거라고 생각한 건지 귀엽게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내 말의 의미는 그게 아니었다. 자애가 아닌 마에다의 사랑과, 그 사랑이 향하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놀랍고 기뻤다. 나는 내 지저분한 사랑을 반쯤 포기한 채 키우고 있었다. 모든 생명체를 박애로 안는 신이 악마 하나를 특별하게 바라봐줄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기에 처음부터 기대를 접고 있었다. 하지만 마에다는 지금 나에게 특별한 사랑을 품어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

순간, 식은땀 한줄기가 등을 타고 흘렀다. 이것은 어쩌면 최악의 불운일지도 모른다. 신이 인간의 감정을 품는 것은 금기다. 신은 언제나 순결해야 하며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고 인간들이 말하는 걸 들었다. 마에다가 한낱 악마에게 사랑을 품었다는 사실이 들켜버리면 마에다는 어떻게 되는 거지?

“찾았다.”

온 세상에 순식간에 겨울이라도 찾아온 듯 싸늘한 목소리.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메카루가 조용한 분노에 찬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갑자기 배가 뒤틀리듯 아팠다. 마에다를 걱정하기 전에 내 목숨부터 걱정해야겠네.

 

재판장에 몇 번 구경하러 간 적은 있지만 직접 온 적은 처음이지, 아마. 붉은 쇠사슬에 온몸을 칭칭 묶인 채 그런 맥없는 생각을 했다. 마계에 있는 악마들은 죄다 온 건지 드넓은 재판장이 비좁게만 느껴졌다. 간부가 재판을 받는 건 처음이니까 많이 궁금했나보군. 판사 옷으로 갈아입은 킨조가 중앙에 앉았다.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공허하고 사나운 눈빛. 저 눈을 본 적이 있다. 사랑하던 친구가 죽었을 때의 눈이었다.

“최근 너는 마계에 아예 돌아오지를 않았지. 거의 이주일 내내.”

그렇게 길게 있었었나. 킨조가 그 메카루한테 부탁할 정도로 날 찾아다닌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어쩌면 길을 잘못 들어서 신계에 들어가 죽임당한 건 아닐까 걱정했어. 너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근데 설마 그 신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을 줄은 아무리 나라도 예상하지 못했네.”

그가 어떻게든 평소처럼 말해보려고 애쓰는 게 느껴졌다. 방청석에 앉아있는 악마들은 알 수 없었겠지만 그와 가까이에 결박되어있는 나는 목소리의 떨림 하나하나가 느껴졌다.

“악마로서의 임무를 내팽개친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는 간부인 네가 가장 잘 알 텐데. 단순한 사형으로 끝나지 않아. 너는 연옥에 떨어져, 너에게 벌을 내린 내가 죽기 전까지 화형당할 거야.”

무시무시한 처벌에 식은땀이 흘렀다. 킨조는 자신이 죽기 전까지 화형당할 거라고 말했지만, 악마의 수명은 무한하다. 죄를 저지르고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영생을 빼앗기기 전까지 악마가 죽는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킨조는 천성이 죄를 저지를 자가 절대로 아니다. 한마디로 나는 영원히 연옥에서 불탄다. 방청석에서 웃음소리가 낭랑하게 퍼졌다. 왜 그랬냐고 묻는 것 같았다.

“…하지만.”

킨조는 가볍게 손을 내저으면서 주위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가 나에게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내 말을 듣는다면 처벌을 가볍게 할 수 있어.”

그는 나에게 손을 뻗었다. 마치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으라고 유혹하는 뱀처럼. 상상해본 적도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던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것을 먹었다.

 

항상 가볍게 걷던 발걸음이 지금은 무겁다. 모래주머니를 발에 단 것 같았다.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오늘따라 숲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해는 먹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고요한 숲에 내 발소리만이 북처럼 크게 울렸다. 꽃을 찾아 바쁘게 날아다니던 나비는 서둘러 나와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고 꿀벌은 나에게 침을 쏘고 죽어버렸다. 말벌의 독도 통하지 않는 악마의 몸에 꿀벌의 침이 들어갈 리가 없다. 꿀벌들은 아껴야 할 자신들의 목숨을 허무하게 날렸다.

원래 이렇게 멀었던가. 아니면 내가 느리게 걷고 있어서 멀게 느껴지는 걸까. 쇠사슬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땅에 자국을 한가득 남겼다. 휙 끄니 흙이 잔뜩 묻은 채 딸려왔다. 흙을 대충 털고 다시 땅바닥에 떨어트리고 끌고 갔다. 목이 탔다. 더웠다. 속이 뒤틀리다 못해 갈기갈기 찢겨졌다. 이제 다섯 걸음. 넷. 셋. 둘. 하나.

“오오토리 씨.”

마에다가 큰 눈망울을 살짝 떨며 나를 보았다. 아마 그는 내 손에 들려있는 쇠사슬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아차렸을 것이다. 유유자적하게 있던 동물들이 죄다 이빨을 드러내고 나를 경계했다. 호랑이는 나를 아예 씹어 먹을 작정이었다. 온갖 동물들의 으르렁대는 소리가 한데 섞여 어지러웠다. 팔을 높이 들었다 내리치니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방금까지 그렇게 더웠는데, 이젠 춥다.

너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건 그 신이라고 킨조는 말했다. 그게 마에다를 죽이라는 무언의 명령이었다는 것을 방에서 쇠사슬을 챙길 때 겨우 알아챘다. 그걸 깨달았을 때 나는 킨조한테 가서 따지지도 않았고, 주저앉아서 애처럼 울지도 않았다. 알아차리기 전과 마찬가지로 묵묵히 쇠사슬을 챙기고 방을 나왔을 뿐이었다.

어쩌면 이게 본래 나일지도 모른다. 위로받는다고 해도, 원하지 않았다고 해도, 나는 살인자다. 신에게 용서받았으니까 괜찮다는 건 그저 내 죄를 없애고 싶었던 나의 이기적인 태도에 불과하다. 용서를 받으면 그게 없어지나. 지금까지 안일한 착각에 살고 있었다. 거기에 마에다를 끌어들이기까지. 지금까지 왜 가식을 떨고 있었을까. 이게 나다. 스스로를 위해 거리낌 없이 타인을 희생시키는 위선자.

마에다는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 그대로 굳어버려 움직이지 않았다. 날 보고 운명을 직감하고 그대로 미쳐버린 인간들의 모습과 같았다. 손에 힘을 주었다. 무거운 쇠사슬을 들어올렸다. 비참한 소리를 내며 쇠사슬이 위협적이게 흔들렸다. 네가 잘못한 거야. 네가 상냥했으니까 내가 이상한 착각에 빠져버린 거잖아. 쇠사슬을 내리쳤다.

휘둘러진 쇠사슬은 땅에 큰 자국을 남겼다. 마에다는 딸꾹질을 했다. 손에 땀이 비가 오듯 흘러 쇠사슬을 놓쳤다. 큰 소리에 주위에 몰려있던 동물들이 울면서 도망쳤다. 나는 주저앉았다. 공포로 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방금 죽기 직전이었던 마에다보다도 더.

“괜찮아요?”

나한테 죽을 뻔했던 마에다가 도리어 나를 위로해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나는 어떤 일도 제대로 처리한 적이 없다. 한심함과 무능의 극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기회조차 차버리는 바보다.

“미안해….”

나는 마에다의 작은 손을 움켜쥐었다. 이제 이 손을 만질 일이 다시는 없다고 생각하자 쓸쓸해졌다. 나는 마에다에게 있었던 일을 전부 말했다. 마에다는 이미 예상했듯 덤덤한 반응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상냥하게 웃으며 내 뺨을 쓰다듬었다.

“…다 알고 있었다면…어째서 도망가지 않았어? 내가 오기 전에 도망칠 수 있었을 텐데.”

“제가 죽지 않으면 오오토리 씨가 죽을 테니까.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라고 생각했어요.”

나와 마에다는 이후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서로를 쳐다보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껴안았을 뿐이다. 도망쳤던 동물들은 슬금슬금 마에다의 곁으로 다시 다가왔다. 뒤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게 느껴졌다. 아마 신을 죽였나 확인하러 오는 킨조의 부하일 것이다. 이제 정말로 작별할 때구나. 나는 마에다에게서 떨어졌다. 마에다의 표정은 그림자가 있어서 읽을 수 없었다.

바로 뒤에 악마가 섰다. 직후 그는 마에다의 화살에 의해 나무에 꽂혔다.

“마에다?!”

경악한 나를 뒤로 하고 마에다는 악마에게로 다가갔다. 처음으로 나는 신의 위압감을 느꼈다. 마에다는 나무에 박힌 악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평소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가라앉은 목소리가 숨을 멈추게 만들었다. 마에다의 손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악마의 목이 서서히 비틀리더니 똑 꺾였다.

“뭘 한 거야…?”

내 목소리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목소리가 떨렸다. 마에다는 반대로 편해보였다. 그는 동요하지 않았고 떨지도 않았다. 그가 뒤를 돌아 나를 보았다. 방금 죽인 악마의 피로 옷이 더러웠다. 그럼에도 예쁜 웃음은 그대로였다. 그는 걸었다. 나를 향해 왔다.

“헤어지기 싫어요.”

작은 어리광이 내 가슴에 안겼다. 그가 나를 끌어안았다. 작은 팔로 힘들게 내 몸을 감쌌다. 아이처럼 칭얼거리면서 달라붙었다. 항상 위에서 모두를 사랑하던 신이, 인간처럼 욕망을 표출하며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냥 같이 도망갈래요?”

본래 마에다라면 절대 꺼내지 않을 말을 꺼낼 정도로, 그는 사랑에 심취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눈만 끔뻑였다. 수없이 망상했던, 현실로는 절대 일어날 일 없다고 못박아놨던 상황. 그게 지금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 했다.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너는 신계에 있어야 하지 않아?”

“어차피 저도 오오토리 씨랑 똑같은 걸요.”

잘 이해를 하지 못하자, 그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오오토리 씨가 어떤 분께 끌려간 직후, 키사라기가 찾아왔거든요. 키사라기도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눈치를 채고 절 데리러 온 거죠. 더러워진 몸을 신계에서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하지만 제가 거절했어요. 그건 곧 지금까지의 일을 전부 없앤다는 소리거든요. 기억을 죽이는 거죠. 싫었어요. 벌을 받는 거보다, 오오토리 씨와 함께 했던 모든 추억이 죽는 게. 그러자 키사라기가 저를 추방시켰어요. 한마디로 자격이 없다는 거죠. 지금 전 신이 아니에요. 그래도 신이었으니까 아직 신통력을 쓸 수 있어요. 이주일 정도 지나면 없어지겠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결국 나 때문에 마에다는 추방당해버렸다. 역시 내가 그때 마에다를 만나지 않았어야했는데. 미안하다고 말하려는 찰나 그가 내 입을 손가락으로 막았다.

“그러니까 필요 없어요. 저는 오히려 기쁘니까. 신이었을 때 몰랐던 걸 알 수 있게 됐으니까. 예를 들면 독점욕이라던가, 소유욕이라던가.”

그는 천연덕스러운 햄스터처럼, 신이었을 때의 자애를 벗어버리고 짓궂게 웃었다. 나는 내 입에 닿아있는 손가락이 너무 신경이 쓰여, 얼굴을 붉히며 부르르 떨기만 했다. 갑작스럽게, 치사해.

“어차피 오오토리 씨도 곧 추방당하실 거 같은데요?”

나는 웃기만 했다.

“나는 추방이 아니라 사형이야.”

“그러면 더욱 도망가야겠네요.”

원래 너 그런 성격이었던가, 하고 물으니 그는 어떨 것 같아요?라면서 뒷짐을 졌다. 나는 한숨을 쉬며 살짝 손을 들었다. 항복.

“…어쩔 수 없네.”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가 손을 잡으려는 찰나, 동물들이 그를 배웅하려고 걸어왔다. 마에다는 모두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고라니는 그의 손등을 핥았고, 벌레들은 그 주위를 맴돌았다. 인사가 끝나고 그는 내 손을 망설임 없이 잡았다..

“악마가 영원히 모를만한 장소는 어딜까요?”

나는 킨조와 메카루의 성격을 생각했다. 그 둘이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 장소.

“…청렴한 곳이겠지. 악마들의 일은 범죄자를 범죄로 처벌하는 일이니까.”

“그런 곳은 찾기 어려운데…여행자처럼 돌아다닐 수밖에 없으려나요?”

힘들 거다. 하지만 마에다는 오히려 기대가 돼서 견딜 수 없듯이 흥분으로 가득한 얼굴을 했다. 아이 같은 그를 바라보다,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첫사랑이란 걸 인정했다. 이루어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죽거나 내가 죽는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기적은 의외로 간단하다.

너를 만나게 해준 새에게 감사를.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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