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축제와 불꽃놀이와 첫짝사랑의 상관관계
연시
* 단간론파 어나더 시작 전 시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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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열시부터 학교 근처 신사에서 여름축제 있대! "
홈룸시간에 나오기에는 뜬금없는 말이었고, 특히 위쪽에서 내려온 중요한 연락을 전달하는 중에 끊고 나오기엔 너무 가벼운 내용의 이야기였다. 클래스 메이트들의 시선이 제게 집중되자 코바시카와가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불꽃놀이도 있대, 하고 덧붙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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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이야기였으나, 반의 대부분이 다 같이 가면 완전 즐겁겠다! 하는 반응을 보여서 이야기의 흐름이 그쪽으로 쏠려버렸다. 킨조 츠루기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던 이야기라도 끝내고 했으면 좋겠다고 눈치를 줘도 듣는 이라곤 하나 없었다. 재밌겠다! 가자! 너도 갈거지? 같은 이야기가 웅성거리는 와중에 들렸다. 즐기는걸 싫어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반이었던 탓에 전부 다 가자는 쪽으로 몰려 연락사항을 전하는 것 보다 빨리 확정이 나버렸다. 자,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하고 아예 말까지 꺼냈는데 거의 대부분이 듣기는 커녕 평소의 몇배는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쿠로카와가 가고싶지 않으면 가지 않아도 돼! 라고 말하지만 저렇게 눈을 반짝거리며 보면 자율이라 할 수도 없었다. 반 전체가 가면 재밌겠다, 따위의 이야기가 들렸다. 반 전체. 클래스메이트긴 했으니 거의 반강제다. 학교 행사가 하나 더 느는 것은 썩 내켜하지 않는다. 그것도 여름축제처럼 사람이 많고 북적거리는 곳에 가는 것이라면. 사건 때문에 못 갈지도 모른다고 은근슬쩍 운이라도 띄우려고 하자 옆에서 들리는 이야기 탓에 그러기도 글렀다. 평소에 그렇게 담담하고 침착한 우에하라가 평소에 비해 엄청 신난 목소리로 옆의 이노리와 야마구치와 떠드는게 얼핏 들렸다.
" 여름 축제 같은거, 가본 적 없는데. 괜찮겠나? "
" 괜찮아요! 우에하라는 저희가 같이 있어줄게요. 그렇죠, 야마구치? "
" 당연하지. 같이 다니면 즐겁기도 하잖아? "
" 그런가... 하긴, 반 전체가 같이 다니면 즐겁긴 하겠군. "
저런 대화를 하고있는데 나는 가지 않겠어, 하고 눈치없이 말할 만큼 인간성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한번쯤은 여름축제를 즐겨보고 싶은 욕망도 없다곤 할 수 없었다. 귀찮았고 불편하고 간다고 해봤자 소매치기 현행범이나 잡을 것 같았지만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을 머금고 꺼낸 오케이다. 너무 어두워 참여할지도 의문인 마에다를 제외하곤 제일 거절할 것 같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말을 꺼냈던 코바시카와가 활짝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려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정해진 이야기에 하루 종일 그 이야기만 들려 솔직히, 많이 후회했다. 젠장. 가지 말걸.
2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한가득 울렸다. 열기의 한 가운데서 조금 바깥. 신사의 나무 아래가 약속장소였다. 매미가 시끄럽게 울었다. 사람 소리가 시끄러웠다. 그러는 와중에 한 아이가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신나게 뛰어다니다가 유카타에 부딪혔다. 오랜만에 꺼낸 유카타였다. 남색의 밋밋하기 그지없는 옷이지만 아끼던 옷이었다. 그 이유중에는 어머니가 사주신 어쩌구와 가족끼리 갔던 첫 여름 축제때의 어쩌구가 있지만 그냥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철퍽, 하고 아이스크림이 묻어 지워지지 않은 느낌. 울상을 짓는 어린 아이에게 화낼만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약간의 주의를 준 후 돌려보냈다. 어떻게든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였다.
정말 최악의 날이었다. 썩 좋아하지 않는 여름 축제에 반 전부라는 명목으로 끌려나왔다는 것 부터 -본인을 포함해 아무도 참여하자 하지 않을 '한 명'을 제외하곤 전부- 마음에 안들었다. 킨조는 다섯번째 한숨을 쉬었다. 다 마음에 안드는데 지각생이 제일 마음에 안들었다. 화면 밝기를 최대한 낮춰둔 휴대폰 화면에 시간이 떠올랐다. 10:12. 약속시간에서 12분 초과.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명을 제외하곤 그럴 인간도 아닌 것 같아서 괜히 속이 끓었다. 무의식적으로 몇번인가 발로 땅을 치자 옆에 있던 코바시카와가 근처에 있던 이라나미 쪽으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신경쓰지 않았다. 눈치 주려 한 행동도 아니었고. 그냥 본인이 찔렸을 뿐이다. 오오토리, 우에하라, 이노리, 야마구치. 굳이 신경쓰려면 지각생인 그들이 신경써야했다. 우에하라를 제외하곤 휴대폰도 쓸 수 있으니 연락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하고 속으로 투덜이는 동안 시간이 3분 더 흘렀다. 그 새에 느긋한 발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자 익숙한 인영들이 눈에 들어 여섯번째로 한숨을 쉬었다. 주인공이라도 된 것 처럼 늦은 등장이였다.
" 미안타, 우에하라 한테 어울리는 유카타 찾느라 늦었다! "
" 유카타를 빌려준건 고맙지만, 그렇게 말하면 전부 내 탓인 것 같잖나, 오오토리. "
"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정말 잘 어울려요, 우에하라! "
" 입어본 적 없다고 하더니. 괜찮지 않아? "
" 이노리와 야마구치가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이 되는군. "
" 내는? 내는 왜 빼는데! "
요란하기까지 했다. 불꽃놀이를 보러 왔지만 시끄럽기론 이쪽이 이겼으니 끝난게 아닌가 싶을 만큼. 귀찮고 불편함에 적당히 예민해진 상태라 유독 그랬지만 킨조는 그것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합당한 분노라고 생각했으나 표출은 못했다. 옆에 있던 클래스메이트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 처럼 다가갔다. 분위기가 화목한 사이에 늦은 것을 사과하라고 할 만큼의 인간성의 소유자기는 했으나 그럴 뻔뻔함은 없었다. 일곱번째 한숨을 내쉬고 그 감정소모를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신경 쓸 필요 없는 이야기였다.
다른 쪽에 신경쓸 일이 있었다는게 문제다. 본인의 의사는 없을 것 같은 멋부린 화려한 유카타에 머리를 묶은 우에하라 킨지에게 슬쩍 눈이 갔다는 것. 그것까지야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스타일이었기에 그럴 수 있다고 자기합리화 할 수 있었다. 눈이 마주친 후에 그가 머쓱하다는 듯 웃어버렸다. 팔자로 내려간 눈썹 밑에 연한 웃음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빠른 새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웃음 하나에 홀린듯 새삼스럽게 연한 바다색으로 물들어 하얀 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유카타 차림이, 하나로 꼭 묶었으나 짧은 기장 탓에 간간히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그 사이로 보이는 목덜미가 예뻤다. 그냥 그렇게 보였다. 너무 빠른 시간에 생각이 바뀌었다. 억울하고 놀랍고, 믿지 못할 만큼.
어둑한 등불 탓에 괜히 더 예뻐보이는 것일 터다. 홀린게 아니면 헛것을 본게 분명했다, 아니면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 괜히 달콤한 그 분위기에 휩쓸렸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몰린게 그렇게 싫다고 생각한지 5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괜히 그렇게 생각했다.
기다리는 동안의 시뮬레이션 대로면 지각생에게 뭐라고 했을 타이밍이었다. 세상이 제가 생각하는 대로만 흘러가는 상수의 세계라면 응당 그랬을 터다. 세상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하나도 제 멋대로 되는게 없었다. 참여 자체는 결국 하게 됐으니, 제 역할대로 대강 잃어버리는 사람 없게 관리하던 도중 집안에서 전화가 왔다거나 하는 이유로 슬쩍 빠질 생각이었다. 솔직히 귀찮았다. 즐거울 것 같긴 해도 귀찮았다. 다시 한 번, 생각 대로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우에하라 킨지를 보고 가슴이 설렜다는게 제일 큰 변수중의 하나였다. 생각도 못한 감정이 물밀듯 밀려왔다.
2.5
사람이 문득 감정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몇 있을 터다. 진부하게도 킨조 츠루기의 경우에는 머릿속에 울리는 종소리였다. 댕그랑, 하고 울렸다. 그의 경우에는 깨달았으나 억지로 부정했다.
3
넋을 반쯤 놓고 있었다는게 정확한 표현이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남색에 가까웠던 하늘이 채도를 잃어 까맣게 보이기만 했다. 밝은 등불과 점포 탓에 별 하나 비치지 않았다. 뜬금없는 사색의 시간 탓에 하늘을 몇번이나 바라보던 킨조를 제외하고는 다들 하늘 사정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잘 놀고 있었다. 눈이 우에하라에 제일 먼저 가는 탓에 그쪽 근황이 제일 자주 보이긴 했지만 하여튼. 적당히 B급 청춘 영화같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바로 앞에 있는 사격장에서 우에하라와 이노리, 야마구치가 헤매고 있었다. 셋. 도와주기에는 바로 옆칸에 있는 사람이 사람이라 가만 두었다. 그 옆에선 마키 키요카가 즐거운 표정으로 사격장 털이 중이였다. 넷. 그 뒤에서 딴 인형을 짊어진 히가가 투덜거리고 있었고, 토모리가 마키쨩 나 저거! 하고 사격하는 본인보다 즐거운 모습으로 인형을 요구하고 있었다. 여섯. 알아서 도와주리라 믿으며 시선을 돌렸다. 시선의 끝 언저리에서 깔깔거리며 금붕어 낚시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끄러운 소리 탓에 모르려고 해도 알 수 밖에 없었다. 이라나미와 오오토리였다. 분명 끼어있어야할 코바시카와가 없는 이유는 먼저 알고 있었다. 미리 누굴 줄거라며 언질한 후 -꼭 비밀로 해달라는 말에 어렴풋이 상대가 감이 잡혔지만 조용히했다.- 오마모리를 사러갔었다. 포함해 아홉. 우에하라네가 헤매다 드디어 총알 끼우는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고개를 돌렸다. 쿠로카와와 키사라기가 사과사탕을 들고 싸우기에 한창이었다. 하나 사서 나눠먹으면 됐잖아! 하고 싸우는 듯 싶었지만 가만히 두기로 했다. 실패한 듯 앞에 있던 과녁이 하나도 쓰러지지 않은 우에하라를 뒤로하고 이노리로 사격수가 바뀌었다. 작아서 닿지 않는 모양이라 고민하고 있었다. 열 하나. 타이라와 하타노가 익살스러운 가면들을 들고 대화중이었다. 이쪽은 쿠로카와네와 달리 수가 아니라 종류로 고민중인 듯 싶었다. 이것저것 꽤 많이 손에 쥐고 신중하게 대화하는 것 처럼 보였다. 이노리는 하나 맞췄는지 신나보이는 얼굴로 웃고있었다. 꽤나 화목한 분위기였다. 열 셋.
남은 하나는 알아서 찾아왔다. 어이, 바보경찰. 하는 소리에 한숨을 작게 쉬었다. 메카루 레이, 열 넷. 본인까지 열 다섯이니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직업병 같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 너무 티나게 보고있지 않아? "
" 맥락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네, 메카루. "
" 목적어가 없어도 알아들을거라 생각했지. 찔리실테니까. "
솔직히 말하자면 찔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본인도 자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 자각한 상태였으니까. 마음 한 구석이 열심히 찔리고 있었지만 부러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상태에서도 뜬금없는 사람에게 걸렸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비상사태!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늘 알고있었지만 눈치나 머리나 그런 면에선 정말 빠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런 부분에서는 적어도 자기만큼은 쑥맥일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잠시 정적이 이어지더니, 킨조가 결국 작게 혀를 찼다. 쯧, 하는 소리에 메카루의 웃음이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그녀 특유의 표정이다. 이 상황에서 별로 보고싶지 않던 모습이기도 했다. 이런데까지 와서 말다툼 할 여력 없어, 하는 말이 킨조에게서 나옴과 동시에 그녀도 입을 열었다. 말 소리가 단박에 끊겼다.
" 설레는 모양이지. 짝사랑이라도 하나봐? 그것도 처음. "
Break! 어떻게든 숨기고 있던 속내를 간파당했다. 일이 이상하게 되어도 한참 이상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제 생각대로 된게 아무것도 없어서 이제와서 꿈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하는 짝사랑의 대상이 생각도 못한 우에하라 킨지에, 그걸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메카루 레이에게 들켰다. 이 한 문장 만으로도 비상이었다. 저 자신도 자각은 했지만 내심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감정을 그녀가 콕 집어주자 말을 잃었다. 평소의 시니컬함이나 침착함도 잃었다. 남은거라곤 애옹거리는 머리 속 비상벨 뿐이었다. 메카루가 잠시 승자의 웃음을 지었다가, 이내 작게 웃음 섞인 한숨을 쉬었다. 누가 봐도 답답함에서 우러나오는 모습이다. 그것도 모를 것 같냐는 그녀 특유의 느낌. 문제가 있다면, 그녀는 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너무 옳은 사람이었다. 난데없이 숨겨왔던 진실로 한대 후려맞은 느낌에 뒷통수가 얼얼했다.
" 본인이 몰랐거나, 숨기려고 했던 모양이지? 눈물날만큼 티가 나는데. "
" 헛소리 하지... "
" 우에하라 킨지, 혼자서 사격 실패해서 우울해 하던데. "
누가 달래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하고 이어지는 말에 저도 모르게 눈을 돌렸다. 있던 자리에는 없었지만 바로 옆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격장을 가볍게 즐겼는지 이제는 화목하게 금붕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옆에서 돕는 사람도 있는게, 짧게 스쳐 보기만 해도 우울함이랑은 거리가 멀었다. 누가 봐도 제쪽이 휘말렸다. 확실히, 오늘은 무언가 잘못되었다. 제 감정부터 전개까지 전부 다! 젠장, 하고 읊조릴 새도 없이 메카루 레이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바보 경찰, 하는 말을 대화 중 언젠가 부턴가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 마저 오늘은 내심 인정해버렸다. 익숙지 않은 감정에 바보가 된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웃긴 꼴이었다. 바닥을 잠시 바라보고,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결국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만 열번은 내쉬었으리라.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는데. 조용한 사이에서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킨조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상대가 이것까지 기다린 것 같아서 괜히 분했다.
" 오늘은 인정해야겠네. "
" 평소엔 인정하지 않은 것 처럼 말하는거, 마음에 안 들어. "
" 인정은 늘 했어. ... 이런 일에서까지 해야할줄은 몰랐을 뿐이지. "
" 날 얼마나 쑥맥으로 본거야? 이것도 마음에 안 드네. "
" ... 나만큼? "
" 그건 심했다. "
어느새 사사로운 잡담이 되어 있었다. 그걸 깨달은건 대화를 시작한 후, 조금 지나 그녀의 뒤에서 얼핏 보이던 우에하라가 보이지 않게 될 즈음. 급하게 그를 찾아 시선을 옮겼다. 전체를 한번 훑었다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다시 눈을 옮겼다. 어디에도 없었다. 오기 전부터 계속 같이 움직이던 이노리와 야마구치는 남겨놓은 채였다. 킨조의 머릿속에 물음표 하나만 달랑 떠있었다. 어디에 간거지? 고개를 크게 움직인 순간 메카루가 아, 하고 무언가 떠오른 것 처럼 짧은 소리를 냈다. 그러곤 다시 웃었다. 얼굴에 그냥 바보경찰을 바라보며 웃고있습니다, 라고 적혀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다시 제대로 들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메카루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고있었다. 내가 이걸 말해주는걸 잊었네.
" 우에하라가, 사과사탕을 사러간다고 그러는 것 같더라. 너한테 전해달라고 했었는데. "
100% 고의성이 다분한 잊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쉽게 말해주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하고 묻는 소리가 생각보다 훨씬 크게 나와 킨조가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어차피 여름축제라는 배경 탓에 시끄러운 공간이었기에 들은 이라고는 주변을 지나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것도 그리 신경을 쓰는 것 같진 않았다. 세상에 저 혼자 신경쓰는 것 같았다. 젠장, 작게 읊조리는걸 본 그녀가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며 웃었다. 새삼스럽지만 메카루와는 정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제대로 생각해보고 싶다면 만나서 이야기라도 해보는건 어떄? 어차피 다들 성인에 가까운데, 통솔 하나쯤은 없어도 되잖아. "
4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늦은 시간임에도 신사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웅성이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지나가다 부딪혔는지 지나온 뒤쪽에서 투덜이는 소리도 들렸다. 오늘은 그런 것에 신경 쓰기에는 너무 바빴다. 머릿속이 우에하라 킨지로 가득했다. 조금 더 알고 싶었다. 이 감정과 그에 대한 감정의 정체 같은 것.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는게 꽤나 벅찼지만 초고교급 경찰의 신체능력을 십분 활용해 어떻게든 제일 속도를 냈다. 메카루가 알려준 사과사탕 판매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훨 멀었다. 중간에 만날 수 있을거라고 귀띔해줬던 건 묘하긴 해도 쓸모있긴 했다. 달리는 중에 든 생각 중 제일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건, 오늘은 너무 생각 외로 흘러간다는 것. 평소에는 뻔뻔하게 이런 충동적인 일 따윈 하지 않는 사람이라 단언할 수 있었고, 그게 제 자랑거리 중 하나였을 터다. 오늘 그 자랑거리를 하나 잃었다.
우에하라를 만난건 사과사탕 판매대가 슬쩍 보이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들마다 사과사탕을 들고있기에 대강 눈치채긴 했다. 우에하라도 사과사탕을 들고 있었다. 축제를 한껏 즐겼는지 묘하게 즐거워 보이는 모습이었으나 다가오는 킨조를 보자 확 굳어버렸다. 눈이 마주한 순간 제일 먼저 읽어낼 수 있던 감정은 당황에 가까워보였다. 킨조? 하고 묻는듯한 목소리에 이쪽도 마찬가지로 얼빠진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이론 곳에서 마주친다면 가까울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 이상이었다.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거리에 둘 다 눈 둘 곳을 찾지 못했다. 겨우 눈을 둔 사과사탕이 등불빛에 반짝였다. 반짝이는 겉면에 우에하라의 모습이 슬쩍 비쳤다.
" ... 그, 우에하라. 유카타 잘 어, 어울리네. "
어색한 그 와중에 용기내어 먼저 말을 꺼낸 것은 킨조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려 했으나 이상한 부분에서 혀를 씹었다. 응? 하고 우에하라가 고개를 갸웃이며 되물었다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이해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나름 신중하게 말을 골랐는데 웃어버려 -아마 말 하다 실수해버린 탓이겠지만- 킨조도 뭐라 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분위기에 편승해 웃어버렸다. 웃다보니 참을 수 없어져 잠시 후에는 끅끅거리며 웃고있었다.
그렇게 웃기를 얼마간. 우에하라가 그제야 진정된 것 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한결 대화하기 편한 분위기가 된 것 같아 킨조도 조금 마음을 놓았다. 인파 사이에서 서있기는 조금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우에하라가 손가락으로 자신이 가던 길을 가리켰다. 원 위치로 가는 방향. 토 달 것도 없었기에 킨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주보고 있던 우에하라가 제 옆으로 오는 동안 슬쩍 스쳐간 그에게서 좋은 향기가 났다는 생각이 들어 킨조는 제 어디가 잘못인지 영원같은 그 시간동안 고민했다. 발소리가 끊길 즈음에 결론을 냈다. 우에하라가 가자며 손짓하는걸 보며 무언가에 홀린거거나 콩깍지가 씌였거나 사랑하는것 중에 하나일거라고 확신했다. 그런 속마음이라곤 하나도 알지 못할 우에하라가 웃는 모습이 보였다.
" 어울린다고 해줘서 고맙다, 킨조. 약간... 음, 걱정이었거든. 입어본 적 없는 옷이었으니 안 어울리면 어떡하나 싶어서. "
" 정말 잘 어울리는 옷이야. 처음 봤을 땐 조금 놀랐는걸. "
" ... 아, 평소랑은 확실히 다른 느낌이니 그럴만 하겠군. "
정확히는 너무 예뻐서 놀랐는걸, 하는 본능이 내뱉는 말을 꾸역꾸역 삼켜낸다. 말했다간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모르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기에 억지로 말은 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하는 상태였다. 마주하기 전 들었던 오만 상상 중에 분명 마음이 막 울렁거려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까지 가면 어떡하지, 같은 것도 있었는데. 대화를 나누는 옆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걸 제외하면 꽤나 괜찮은 대화였다. 어차피 슬쩍 확인해본 사과 사탕에 비친 우에하라도 이쪽을 보고 있진 않았다.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감상하는 척. 지금까지 중 손에 꼽을만큼 즐기지 못한 여름축제를 만끽하는 것 마냥.
" 그나저나, 생각도 못한 의상이네. "
" 아, 오오토리가 여름 축제라고 빌려준거다. "
" 어쩐지. 그렇게 화려한 옷은 너한테 없을 것 같았거든. "
… 등, 꽤나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대화를 이었다. 제대로 보지 않긴 했지만 옷을 가리키거나, 살짝 집어 들어보이거나 하는 제스처와 함께 웃는게 저쪽은 별 생각 없이 하는 것 같아 속이 타들어갔다. 말하는 것도 그랬다. 괜히 다른 의미를 붙이지 않으려 애썼다. 붙여봤자 망상에 불과할 터였기에 더욱. 이상한 생각을 하는게 자신 뿐인 세상 같았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걸 알면서도 오늘은 괜히 그랬다. 정말 하나도 되지 않는 날이었다. 평소같았으면 지각한 이유를 캐묻거나 늦지 말라거나 이렇게 사과사탕 사러 나오지 말라고 했겠지. 이렇게 단란하게 이야기 할 생각 같은건 다음 생 쯤에야 했을텐데 현실은 너무 단란한 대화 중이었다. 제 머릿속에서 킨조가 머리를 싸맸다.
그러는 새에 갑작스럽게 폭발음이 들렸다. 빠르게 사고가 전환됐다. 머릿속에서 경찰 킨조가 터지듯 튀어나와 자리를 뺏은 것 처럼 대화를 하다 말고 휙, 하고 고개를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테러인가? 이렇게 사람이 많은 축제니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 사이로 우에하라가 어깨를 톡톡 건드리는게 느껴졌다. 폭발이었지? 묻는 킨조의 말에 우에하라가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아무리 봐도 위기감과는 너무 멀었고,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원래 그런 사람인걸 너무 잘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어깨 위에 얹어져있던 손이 하늘을 가리켰다. 펑! 하고 다시 폭발음이 들렸다. 화려하게 빛나는 불꽃놀이가 하늘에 떠있는걸 보자,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 직업병이네. "
" 그러게 말이야. ... 애초에 이 축제도 불꽃놀이를 보러 온게 아니였나? "
" 하하… 알고는 있지만, 폭발음은 어쩔 수 없네. "
어색하지만 변명하듯 말했다. 불꽃놀이를 보러왔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제 머릿속의 경찰 킨조가 미웠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오늘은 좀 가라앉고 평범한 학생이어도 괜찮잖아! 하고 괜히 제게 투정부리고 싶었다. 뜬금없이 새로운 감정도 찾아버렸는데. 폭죽이 하나 더 터질 때 까지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타마야, 소리가 우스웠다. 킨조는 머리칼을 한번 헤집었다.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그가 한 번 손을 내밀었다. 킨조, 하고 짧게 부르는 소리에 한번 그 손을 봤다가 그의 얼굴을 다시 올려봤다가 하길 두어번 하고서야 손을 잡자는 소리임을 깨달았다. 어? 하고 다시 얼빠진 소리를 냈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보고 있는 작은 메카루가 바보 경찰, 하고 비웃었다.
" 돌아가려면 꽤 걸릴 터니. ... 둘이서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가, 킨조? "
다시 큰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하늘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폭발음 대신 댕, 하는 종소리로. 다시 한 번 머릿속에서 종이 울렸다. 그 소리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아주 미치겠다. 제 마음을 알지 못하고 그런 말을 하는 킨지가 야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냉큼 그 손을 잡았다. 무의식이 한 짓이다. 오는 기회는 놓치는게 아니야! 하고 무의식이 떠드는 것 같았지만 그걸 신경 쓸만큼 제정신이 아니었다. 손이 부드러웠다. 우에하라가 웃으며 가지,하고 끌고갔다. 손이 따뜻했다. 우에하라가 인파를 헤치고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 걸어가고 있었다. 과부하 상태였다. 폭음이 들렸으나 이번에는 제 머릿속에서 들리는 거겠지, 싶어 가만히 두었다. 불꽃이 그걸 무시하듯 유유히 하늘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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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가 적어지고 그 자리를 스치는 바람이 채웠다. 여름이긴 하지만 밤인 탓에 차갑게 식은 바람을 맞고있으니 점차 정신이 들었다. 하나하나 차근히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겨우 돌아왔다. 슬슬 접는 노점이 하나씩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게 안쪽으로 가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밝은거라곤 등불이나 우에하라의 손에 들린 그 불빛을 반사하는 사과사탕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불꽃놀이는 박차를 가해가는지 한 두개씩만 터지던 불꽃이 줄줄이 터져나왔다. 시작한게 바로 전 같았는데 정신이 없는 사이에 시간이 꽤 지난 모양이었다. 잡았던 우에하라의 손이 약간 축축했고, 지나가는 사람이 적어지기는 했는데 우에하라가 있을 약간 앞에서 작게 어? 하는 소리가 나는걸 보아하니 제대로 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평소에는 드러나있지 않던 목덜미로 땀이 한방울 흐르는게 보였다. 어떤 인간이 봐도 길을 잃어 긴장했다, 할 꼴이다. 여기가 아닌데? 하고 혼자 중얼일 즘에야 말을 걸었다. 저기, 우에하라? 그 소리에 우에하라가 크게 움찔했다. 어찌됐든 이어가긴 했던 걸음이 뚝 멈췄다. 우물이는 소리가 작게 들리는 것 같았다.
" ... 미안하다, 킨조. "
" 그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길이라도 잃은거야? "
" 먼저 끌고 와놓고 그렇다고 말하기도 우습지만, 길을 잘못 든 것 같군. 돌아가는 길은 기억하고 있지만. "
" ... 이만큼 왔는데 돌아가긴 아쉬우니까, 차라리 더 안쪽으로 가볼까? 언덕쪽으로 가면 괜찮을 것 같은데. "
말을 하는 내도록 괜히 미안했는지 묘하게 침울한 표정이던 우에하라가 안쪽으로 가볼까? 하는 말에 얼굴에 화색을 띄웠다. 킨조가 내민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끄덕이는게 경쾌해 약간 웃음이 났다. 아닌 것 같으면서 정말 티를 많이 내는 귀여운 사람이었다. 아니라고 부정하려 했지만 어쩌면 생각보다 제가 우에하라를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살풋 들었다. 머릿속에서 괜히 손을 휘저어 지워낸다.
뻔뻔스럽게 말해두기는 했으나 실은 하나도 모르는 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키보가미네에 입학한 후 사적인 용무로 다니는 일이 없었으니까. 경찰이기에 지리를 외워두기는 했으나 이 주변은 제 관할과 꽤 멀었다. 얼핏 아는 정도였다. 대강 감이나 기억, 보이는 것에 의존해 가다보면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초고교급 경찰이라는 재능을 발휘할 때가 조촐하고 뜬금없이 다가왔다. 팔을 걷어 붙이고 앞으로 나섰다. 근처에서 제일 불꽃놀이가 잘 보일만한, 사람이 없는 곳으로. 차근히 걸어가는 와중에도 몇번이나 폭죽이 터졌다. 우에하라가 가끔 하늘을 보는 시간을 기다려주며 길을 찾았다.
" 불꽃놀이는, 새삼스럽지만 정말 아름답군. "
" 제대로 본 적이 없던거야? "
"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래. 특히 입학 전에는 포교로 바빴으니 말이야. "
그 다운 말에 킨조의 얼굴에 자연스레 웃음이 떠올랐다. 처음 즐기는 불꽃놀이였구나. 그 처음을 반 전체가 아닌 제가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 한구석이 따끔따끔 찔렸지만 무시하고 꿋꿋이 걷기로 했다. 부러 잡은 손에 조금 힘을 주어 꾹 잡아둔 채였다. 돌아가려면 늦은 시간이다. 돌려보내기도 아쉬웠다. 아깝다는게 옳은 표현일지도 몰랐다. 킨조는 제 자신의 독점욕이 이렇게 강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마음이 밍숭맹숭했으나 하늘만큼은 그에 대조되듯 화려했다. 예뻤다. 자기 자신의 마음 빼고! 둔한 우에하라가 그 탓에 가지게된 뜬금없는 자아성찰의 시간을 몰라주는게 다행이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둔함 탓에 평생 모를지도 모른단게 문제였지만. 킨조, 불꽃이 예쁘군. 뒤에서 종알이는 소리가 -우에하라의 목소리는 전혀 종알임에 가깝지 않았겠지만, 콩깍지가 귀에도 낀 모양이었다- 들려 괜히 속을 끓였다. 그러네. 미적지근한 대답을 하며 다른 쪽에 집중했다. 난데없이 길 찾아 삼만리였다.
네다섯개의 불꽃이 겹칠 쯤에 언덕을 찾아냈다. 풀숲인데 괜찮을까, 하는 고민이 우에하라와 함께 있으니 괜찮지 하는 마음에 져서 냉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무가 그리 크게 자라지 않았기에 하늘을 가리는 것이 없어 보기는 좋았다. 불꽃놀이가 슬슬 절정을 지났다는게 문제지. 우에하라가 길을 잃었던 탓인지, 그냥 킨조가 길을 찾는게 느렸던건지 몰라도 불꽃놀이는 슬슬 끝물이었다. 연달아 들리는 폭음이 이제는 다른 의미로 신경 쓰였다. 너무 늦어버렸다, 하는 마음에 괜히 조마조마했다. 실망이라도 했으면 어떡하지 싶어 괜히 눈치를 봤다.
어째선지 또 눈이 마주쳤다. 볼 때마다 눈이 마주치니 운명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우에하라가 작게 웃으며 손을 내밀어 살살 고개를 돌려줬다. 난 괜찮으니 불꽃놀이를 감상하도록.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어려있었다. 제가 신경쓰고 있는 점을 아무렇지 않다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긴장이 다시 누그러졌다. 웃으며 밀어주는 대로 고개를 고분고분 돌렸다. 아닌 척 했지만 귓가가 뜨거웠다. 붉게 물들어있을 낯이 어두운 날이나 여러 색으로 빛나는 폭죽에 가린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다. 눈 앞에서 화려하게 불꽃이 터지고 있었는데 턱에 닿았던 손이 다시 자리를 잡으려 풀에 닿는 소리만 선명하게 들렸다. 그 외에는, 크게 울리는 제 심장 소리 정도.
6
" 제대로 봤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늦은게 아닐까 싶어서 아쉽네. "
" 그래도 봤다는게 좋은게 아니겠나. 난 즐거웠으니 상관 없어. "
" 즐거웠다면 다행이지만. "
평소보다 떨리는 목소리에 가끔 씹은 말. 그, 반 모두와 보면 더 즐겁지 않았겠어? 하나부터 열까지 어색하게 이어지는 킨조의 한마디에 우에하라가 킨조를 바라봤다. 혼자 재잘재잘 헛소리를 늘어놓던 와중, 말이 이어지지 않는 것을 의아히 여기다 그를 바라봤다. 파랗게 가라앉은 눈과 마주했다. 아무리 봐도 웃음기라곤 찾을 수 없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즐겁다며 웃고있던 사람이었다. 말을 잘못 골랐나? 어디가? 전에 했던 말이잖아? 아무 말도 못하고 어버버 거리는 동안 머릿속으로는 한참 방황했다. 옆에서 펑펑 터지는 불꽃은 아랑곳 하지 않고 서로 마주보기만 하고 있었다. 킨조쪽은 눈을 피하지 못했다는게 가깝다. 오늘 내도록 한참 피하고 있었던 얼굴이었으나 이 기회에 한참 몰아보듯 했다. 한참의 시간 후에 입을 꼭 다물고 있던 우에하라가 입을 열었다. 우스운 일을 말하자면, 킨조도 그 타이밍에 말을 꺼냈다는 점.. 순정만화의 클리셰마냥 입을 열고, 네가 먼저 말해 따위의 실랑이를 잠시 하다가 우에하라가 네가 먼저 말해, 하고 단호히 말한 탓에 결국 킨조로 순번이 넘어갔다. 킨조가 숨을 고르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말을 꺼냈다.
" 분명, 반 전체가 같이 다니면 즐거울 것 같다고 했지 않았어? 아침에. "
어색한 토론이다. 킨조가 기억을 더듬어 나름 자신있게 또박히 말했건만 반대쪽에서 나오는건 답답함에 가까운 한숨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킨조가 이해할 수 없는 제스처다. 우에하라가 이쪽을 바라보다 말고 하늘에 시선을 둔다. 타이밍 좋게 불꽃이 올랐으나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선 오히려 야속했다. 지금 너 떄문에 이 사단이 났다고! 비난이라도 할 수 있었다.
옆쪽에서 괜히 풀끼리 맞닿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두번도 아니라 연달아 그랬으니 누가 생각해도 고의다. 아마 이건 긴장이리라. 몇번 읽어본 적 있을 감정에 킨조가 고개를 갸웃였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기에 그러는지, 궁금증만 일었다. 재촉할 수는 없었다. 가만히 기다리는게 고작이었으나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이어진 탓이다. 그게 멈춘 후에는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도 조용하지 않았으나 조용하다 느껴졌다. 제 안에선 시간이 멈췄다 표현하는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 이전에, 메카루가 불꽃놀이에 관한 속설을 알려줬던 적이 있어. 그, 그러니까... 그게. "
그러니까? 솟아오르는 질문을 꾹꾹 눌러담는다. 우에하라는 고개를 숙인 채였다. 부끄러우니 지금은 말하기 곤란하다는 것 처럼 보였다. 그는 고의성 없이 사람을 아주 잘 다루는 사람이다. 새삼스럽게 느낀다. 처음부터 그랬는데 마지막을 장식할 즈음에야 꺠닫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때는 이미 늦었다. 다리가 가라앉고 난 후에야 늪에 침식당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것 처럼 한참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당혹감, 후에는 의문, 이제는 기대. 킨조는 아닐거라 생각했던 감정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왜? 그녀가 왜 네게? 하고싶은 질문들을 짧게 내는 침음 하나로 막아버린다. 그 정적 탓에 발을 구르고 싶은건 이쪽이다. 뜸을 들이듯 길게 이어지는 침묵은 사람 애를 바싹 태웠다. 하늘에 피어나는 꽃의 수를 세기도 지쳤다. 손에 집히는 풀잎을 억지로 뜯어내는 나쁜 행위도 그만하고 싶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에 지칠 즈음에야 그가 언제나처럼 조곤히 말을 꺼냈다. 너무 나긋한 말투였다.
" 좋아하는 사람과 둘이서 불꽃놀이를 보면 이루어진다 하더군. ... 현재의 너와 나처럼 말이다. 아직,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
나오는 말에 비해서 너무. 분위기가 분위기니 어느정도 알아채고는 있었으나 이렇게 나올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딸꾹질이 났다. 어? 얼빠진 소리를 내는 킨조에게 우에하라가 추가타를 날렸다. 내가 알고있는게 혹시 거짓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대답하란 소리다. 제 사랑을 이루어 줄 것이냐, 아니냐. 말만 다르지 고백이었다. 두뇌 회전이 괜히 빠른게 아니다. 단박에 이해했다. 낯이 뜨거웠다. 머릿속이든 낯이든 어디선가 무언가 터지는 것 같았다. 귓가가 홧홧하게 달아올라 손으로 슬그머니 가린다. 우에하라가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기대할만 하지, 그래도 조금만 기다려줘! 하고 말하고 싶었다. 오늘 밤 생겨난 감정, 그가 하는 말. 좋아함, 사랑. 아, 몰라! 킨조는 고개를 푹 숙여 낯을 가렸다. 답지 않게 말소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쥐어짜내듯 소리를 냈다.
" 이루어질걸. ... 아니, 이루어졌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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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하라, 최근 고민이 있나봐요! 이노리가 옆의 야마구치에게 소근소근 귓속말을 한지 1분도 지나지 않은 참이었다. 저기. 듣기라도 한 것 처럼 타이밍 좋게 둘을 부른 우에하라가 괜히 주변을 살폈다. 우에하라를 바라보던 이노리가 말이 없는 우에하라를 따라 가만히 있다가, 이내 고민 상담인걸까요! 하고 야마구치에게 다시 속삭였다. 교실에는 사람도 몇 없단걸 몇번이나 확인해 알고 있었지만 괜히 주변을 다시 살폈다가, 큼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가, 손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귓가를 식히기만 몇번. 우에하라가 지겨울만큼의 정적을 만드는걸 이노리와 야마구치가 침착하게 기다려주고 있었다. 기다림에 지쳐 우에하라를 부르려 할 때 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작게 가라앉았다.
" 이노리, 야마구치. "
" 무슨 일이에요, 우에하라? "
" 우리가 들어줄 수 있는거라면 들어줄테니까 말해봐. "
동시에 비슷한 말을 하는 둘에게 우에하라가 웃어보엿다. 너희들은 정말 좋은 친구군, 하는 뜬금없는 칭찬에 부끄러워하던 당사자들이 아니라며 웃었다. 그래서요? 이노리의 물음에 우에하라가 다시 괜히 눈을 피했다. 평소의 그 답지 않은 행동이라서 이노리가 다시 야마구치에게 속삭였다. 큰 문제인가봐요!
"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도와줄 수 있나? "
뭐?! 놀란 야마구치가 큰 소리를 내자 우에하라가 이노리가 입술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쉿. 당혹스러운 표정의 우에하라가 다시 주변을 살폈다. 그 모습이 더 시선을 끌었지만 상냥한 반 친구들은 부러 모른척 해줬다. 상냥하지 않은 메카루를 제외하고는 전원이. 구두가 또각이는 소리가 반 전체에 울렸다. 책상 위로 다른 이의 손이 올라왔다. 큰일이다, 하고 셋이 동시에 생각했다.
"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들어버렸네. 재밌어보이는데 껴도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