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제
비비티
학급재판에서 마에다는 그 개년과 소름 끼치도록 똑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주저앉았다. 목구멍을 긁어내듯 튀어나온 날카로운 비명이 귓구멍을 파고들어 뇌를 난도질했다. 저 비명이 뜻하는 의미는 뻔했다. 뇌가 난도질당해, 사고가 멈췄다. 긁힌 상처에서 꿀렁이며 나온 찐득한 검보라색 액체가 나를 삼켰다.
하지만 웬걸, 죽은 뇌가 계산적으로 내뱉은 결론과 다르게 마에다 유우키는 마에다 유우키로써 고개를 들었다. 우츠로란 이가 아닌 마에다 유우키로.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마에다 유우키는 흑막이었다. 마에다란 인격이 덮어 쓰이기 전 본 인격인 우츠로란 개 같은 놈은 초고교급 절망이자 이 모든 일의 최종적인 흑막이었다.
마에다 유우키는 흑막이 아니었다. 덮어씌운 인격 '마에다 유우키'가 그 개놈을 누르고 살아가길 희망했기에 마에다는 그 새끼가 아닌 마에다 유우키란 엄연히 다른 인격체로 눈을 떴다.
그냥 궤변이지. 이미 알고 있음에도 애매하게 짝이 없는 결론을 내리며 애써 부정했다. 마에다 유우키를 보며 나는 화를 냈던가 미소를 지었던가. 분노를 느꼈던가 안도를 느꼈던가. 절망했던가 희망했던가. ...모르겠다.
개년은 깨어나지 않는 개놈에 절망했고, 무너졌고, 실성했다. 그러기를 한참, 깔깔거리며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계속해 내뱉던 개년이 갑자기 한껏 차분해진 표정으로 회고하듯 말을 털어놨다. 사실... 이해하지 못하고 하고 싶지도 않은 상황에 잠깐 현실 도피하듯 눈을 돌렸고, 자백하듯 털어놓는 개년에 날 서던 경계가 조금 풀어졌었다. 그러니깐, 그래, 방심했었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모노쿠마를 이용해 마에다에게 살해하려 할지는 몰랐다. 갑작스럽게 마에다의 배후에서 나타난 모노쿠마가 손쓸 틈도 없이 손을 들어 상해를 입히려 할 때 다행히도 발 빠른 키사라기의 등장으로 아슬하게 저지할 수 있었다. 안도 후 찾아오는 경멸과 분노에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럴 틈도 없이 연구소 붕괴를 알리는 키사라기에 입을 꾹 다물고 죽은 눈을 한 개년을 한 번 흘기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5층의 붕괴에 어떻게 되나 싶었지만 다행히 키사라기의 도움으로 어찌저찌 탈출의 코앞까지 올 수 있었다. 마에다는 살아서 그곳에 섰다.
'마에다 유우키'는 자살을 선택했다. 빛이 흘러나오는 바깥까지 한 걸음. 고작 그 한 걸음을 못 내디디고 언제부터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는 권총을 관자놀이에 대더니 역광에 보이지 않는 얼굴로 태연자약이, 높낮이 없는 평온한 음성으로 자살을 선언했다. 우츠로가 아닌 마에다 유우키 였지만, 마에다 유우키로 서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오오토리가 절박하게 설득하고 옆에서 메카루가 당황하며 거기에 거들었지만 결국 마에다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했다. 그 결정에 대해 욕을 하거나 비난을 할 수는 있더라도 막을 수는 없었고 그럴 권리도 없었다. 제대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그 최후를 끝까지 지켜보는 것뿐. 사실... 글쎄. 나는... 어쩌면... 그랬어야... 한다고... 생각했던걸, 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분명 기억하던 건 갈피 잡을 수 없던 나의 표정에 마에다는 미소를 지어줬단 거다. 눈을 곱게 휘며, 한껏 미소를 지으며. 뭐라고 말하기 전에 낯익은 총소리와 함께 흩날리듯 마에다가 스러졌다. 탄식에 찬 옅은 신음이 들렸다. 마지막까지 마에다는 희망에 미소를 지었다. 그게 우리에게 있어 절망이라 여겨질 수 있더라도.
***
아이들의 유해는 연구소가 수장됐을 때 같이 수장 됐기에 형평 좋은 비석을 세우는 게 고작이었지만 마에다의 시체만은 내가 확실히 가지고 왔었기에 제대로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누구였더라. 둘 중 하나가 나를 제정신이 아니라 매도했던 게 기억난다. 아니,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였을지도. 헬기에 마에다를 들어 실을 때 관자놀이에 남은 화상 자국과 그 중심에 난 구멍에 흐르는 뇌와 피가 똑똑히 보였다. 역겹다? 별로 그렇진 않았다. 이 정도의 시체는 몇 번 봤었고 그보다 더한 것도 봤기에 비위가 상하진 않았다.
...두 사람은 그런 것 같지 않던 것 같지만. 역시 머리가 뚫린 시체와 함께 있다는 건 정신적 충격이 컸던 건지 메카루가 입고 있던 마이를 집어던지며 시체를 가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새파랗게 질린 안색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시체의 얼굴 위로 마이를 덮어주었다. 얼굴을 볼 수도 볼을 쓰다듬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손을 마주 잡았다. 이젠 온기가 전부 빠져나가 싸늘히 식은 손이 안타까워서 괜히 더 꽉 잡았던 것 같았다.
메카루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무슨 소리인지 대충 이해했다. 결국 난 마에다가 죽는다고 할 때 열심히 말리는 두 사람을 보기만 할 뿐. 마에다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메카루는 분명 내가 마에다가 죽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며 죽음으로써 속죄해야 한다 생각하고 있을 거라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왜냐면 나도 모르니깐.
그 날, 마지막 학급 재판의 날, 최후의 날, 끝의 날, 마지막 장의 날, 종언의 날. 그 날 이후로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사막에서 익사하거나 북극에서 소사 하는 것처럼 감각이 엉망이 되고 뇌가 관통되고 사고가 뒤집혔다.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멍하니 허상을 보다 뒤늦게 머리를 두어 번 흔들고 기계적으로 약을 씹는 게 일상이 됐다.
언제 나와 같이 마에다를 향해 말을 걸다 흔적조차 없는 빈 장소에 좌절하며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마에다가 나타나면 절박하게 껴안다 그 목을 조르고 잘근잘근 찢어 버리고는 종래에 핏덩이로 엉긴 잔해에 앞에서 뚝뚝 눈물을 흘렸다.
마에다는 나를 송두리째 흔들고 갔다. 차라리 나를 흑막이라 지목하지 그랬어. 왜 하필이면 너였는지. 왜 하필이면 너야만 했는지. .....왜 하필이면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정말 그게 최선이었는지. 그래서 나는 어떠한 결말을 원했던 건지. 시체의 앞에서 웅크리며 원망하듯 쏟아 놓는 질문은 결국엔 돌고 돌아 항상 나에게로 돌아왔다.
마에다, 내 친우, 내 클래스메이트, 내 마음의 친구, 내 전우, 내 이해자, 내 사랑. 응, 내 사랑. 돌연 눈앞이 흐려지며 눈가가 뜨겁게 달아오르다 이윽고 볼에 축축한 무언가가 닿아 흘러넘치며 기분 나쁜 자국을 내며 낙하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눈물이 손안에 찝찝하게 묻어났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인정하면 안 된다. 이런 건. 이런 건... 모든 게 늦었으니 인정하면 안 된다. 인정해서는 안 돼.
마에다가... 마에다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