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ve-Hate
글쓰는커피잔
영문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죽었다. 그 사람은 자신을 키사라기 기관이라는 곳에서 절망의 구축과 생존자 구호 작업을 한다고 했다. 그는 동행이 한 명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를 메카루와 오오토리라고 불렀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오오토리라고 불리던 녹발의, 훤칠한 키와 괴상한 패션의 남자가 죽었다. 산노지가 죽였다. 불로 태워 죽였다. 메카루라 불리는 주황색 단발의 미인은 잠시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다가, 냉정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애절한 비명을 질렀다.
산노지는 그녀를 날려버렸다. 그녀의 동행이 죽었던 것과 같이, 불로 날려버려졌다. 우리는 그녀가 죽은 줄만 알았다. 이 불가사의한 상황의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있었던 그들은 그렇게 덧없이 사라졌다. 우리는 혼란에 빠졌다. 그 혼란 속에서 죽은 두 명은 잊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첫 번째 처형이 끝난 날. 해변을 따라 걸었다. 아직도 그 광경이 기억난다.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오염이 없는 우츠로시마는 바다에 달빛이 녹아드는 장관을 보여줬다. 지평선에서는 반짝거리는 별모래들이 넘실거렸고 밤의 바다는 아무런 소음 없이 자신의 소리를 양껏 들려주었다. 광활한 우주는 하늘을 통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러던 나는 그녀를 발견했다.
메카루 레이.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냉정하게 보였던 그녀는 왜인지, 한동안 울기만 하고 있었다. 그녀는 두 명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 킨조 츠루기. 오오토리 테루야. 분명 죽은 사람의 이름이 오오토리였지.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분명 소중한 사람이었을 터. 측은한 마음이 드는데 그녀가 갑자기 나를 쏘아보았다. 나는 문득 우츠로시마에서의 첫 번째 날, 그녀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마에다 유우키. 내 이름을 부르며 어딘가 쓸쓸하던 그녀의 표정은 그때 보기가 괴로울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와 함께하게 되었다. 그녀가 알려준 정보의 양은 방대했다. 그리고 전부 충격적인 내용 뿐이었다. 생존한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 나와 그녀가 알고 있던 마에다의 관계. 그 모든 걸 알았지만 살육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열심히 노력했고 사실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막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영역 밖이었다.
그것은 심지어 메카루 씨에게도 포함되는 말이었다. 그녀는 우리 중에서 가장 열심히 행동했다.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동료가 점점 죽어가는 슬픔을 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그녀는 살육을 막으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보이드와 모노크로우는 끈질겼고 그들은 하나둘 죽어가며 우리를 하나둘 죽여갔다.
누가 보이드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우리는 치를 떨었다. 내 옆에서 웃고 슬퍼하고 떠드는 친구가, 밤이 되면 마피아나 늑대인간으로 변해 희생양을 고른다. 그런 공포 안에서 희생양들은 희생양들을 골랐고 늑대는 양들을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런 상황 안에서도 희망은 돋아났다. 소라, 나, 그리고 메카루 씨는 서로를 의지했다. 메카루 씨는 그녀가 겪었던 살육전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해 주었다. 물론 나와 그는 다른 사람이지만, 자아 자체는 똑같다고 들은 바 있었다. 그게 그의 힘이기 때문이었다.
난 새삼 쑥스러웠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그 현장에 있었다면 그와 같이 행동했을 것이라는 게 신기했다. 메카루 씨 본인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가끔은 나 같은 무능한 게 어떻게 그런 행동을 했었냐고 말했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취소했다. 그 녀석도 거의 무능했다고 말했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쓸쓸해 보였다.
언제던가, 미츠메는 메카루 씨에게 말했었다. "당신의 반은 과거에, 또 반은 현재에 있어."
소라는 메카루 씨에게 말했었다. "메카루 씨가 원하는 마에다는 누구예요?"
메카루 씨는 그녀들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마에다아, 여기 앉아봐."
그녀는 종종 나를 자신의 방에 부른다. 그리고는 술을 권한다. 대부분 독한 와인이다. 나는 항상 정중하게 거절한다. 그야 난 미성년자니까. 그러면 그녀는 너답다며 웃곤 한다.
메카루 씨의 방에 들어갈 수 있는 때는 대부분 비밀회의를 할 때뿐이다. 소라, 나, 메카루 씨를 주축으로 하는 모임이다. 어떻게 하면 보이드에 대항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같은 것들을 논의하곤 한다.
하지만 그녀가 혼자 오라며 부르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어쩐지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그녀의 예전 동료가 생각나는 거겠지. 오오토리라는 사람은 죽었고 그녀가 알고 있던 마에다 유우키도 죽었지만, 한없이 똑같이 생긴 내가 있으니 친근감이 드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아주 약간만 과장한다면 그녀가 나에게 사적인 관심이 있다고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때때로 이와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레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마구 젓는다. 설레발을 쳐도 정도가 있다며 손에 얼굴을 묻는다.
우리 중 누군가가 사적인 관심이 있다면 그건 분명 나일 것이다. 왜냐고 물으면 그녀의 외모가 출중한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그런데 난 그 다른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그냥"?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그녀에게 서서히 끌려들어 갈 뿐이다.
메카루 씨는 차가운 사람이다. 그녀가 본인 입으로 말했었고 그녀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나 스스로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를 살릴 방법을 냉정하게 연구할 뿐, 그 눈에는 애정이나 우정이 담기지 않는다. 그것이 아까 내가 했던 확신의 근거다. 그녀가 높게 평가하는 인물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차갑다. 특히 분란을 조장하는 인물을 상대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예전보다는 성격이 부드러워진 것이라고 하니 경악스럽다.
달리 말하자면 차갑던 그녀를 그나마 따뜻하게 만든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 사람들은 당연히 그녀의 동료들일 것이다. 그녀의 옛 동료들은 거의 다 죽었고 남은 동료들은 얼마 안되니, 무엇보다 소중하겠지. 그런 그녀가 오오토리라는 사람을 잃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생각만 해도 우울해졌다.
"앉아보라니까?" 그녀가 침대에 앉아 자신의 옆자리를 팡팡 턴다.
메카루 씨가 술에 취하는 때는 없다. 거의 없는 게 아니라 없다. 그녀는 주량이 꽤 센 편이다. 4~5병 정도를 마셔야 취기가 돈다고 말한다. 즉 그녀가 취했다는 건 그녀가 4~5병을 마셨다는 의미이다.
"메카루 씨. 지금 많이 취하셨어요."
"메카루라고 부르라고 했지?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고."
"메카루 씨의 저는 메카루 씨를 메카루라고 불렀나요?"
"메카루!"
그녀가 소리치자 나는 꼬리를 내리고 "네..." 라고 말한다. 그러니 그녀가 다시 소리친다.
"반말!"
"응... 메카루."
메카루는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원래 저렇게 유치한 사람이었던가? 그러고 보니 주변에 테디베어 장식품들이 있다. 그녀의 침대에는 커다란 테디베어 인형이 떡하니 놓여있다. 그게 평소의 그녀와는 갭이 심해서, 나는 무심코 웃음이 나온다.
"어?"
"왜 그래?"
"마에다... 잖아?"
그녀가 벌떡 일어난다. 그녀가 홀짝이던 와인 잔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조각난다.
"으아, 깜짝이야! 갑자기 왜 그러세요?"
"마에다 유우키... 너야?"
"그럼 당연히 저죠! 도대체 왜..."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메카루는 내 멱살을 잡고는 벽으로 밀쳐냈다. 나는 벽에 뒤통수를 부딛쳤고 충격이 전신에 전해졌다. 그녀는 내 얼굴에 대고 윽박지른다.
"어떻게 살아난 거야! 왜 살아난 거야? 또 모두를 죽일 생각인 거야?"
메카루의 목소리는 분명 화가 난 음색이다. 난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녀가 감정을 폭발시키는 일은 그녀가 웃는 것만큼이나 드물기 때문이다.
"오오토리도 네가 죽인 거야. 여기 있는 아이들도 죽이진 못할 거야. 넌 이제 누구도 못 죽여! 내가 전부 막아낼 거라고!"
"메카루, 정신 차려! 난 네가 알고 있던 마에다가 아니라고!"
"입 닥쳐. 난 네 정체를 알아. 널 섬기는 여자 정체도 알아. 이번에는 막을 수 있어. 난 널 알고 있으니까! 이 살인마, 개자식, 철면피, 악마..."
그렇게 악담을 쏟아내던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인다. 내 어깨에 그녀의 얼굴이 닿는다. 그녀의 곱슬거리는 머리가 나에게 닿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너..."
어깨에 축축한 감각이 느껴진다. 어깨가 젖어가고 있다. 그녀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네가 그랬잖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희망을 잃어선 안 된다고... 그런데 어떻게..."
"메, 메카루..."
"오오토리가... 죽었어. 그 바보 자식. 정말 내가 봤던 사람들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멍청했어. 그런데 죽은 모두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굳게 먹겠다 하더라고. 그리고 무리하다가... 죽었어. 그 바보가..."
내가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마에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왜..."
메카루가 알고 있던 내가 흑막이었다는 것은 들은 바 있었다. 그녀가 나를 볼 때마다 어떤 기분일까. 항상 생각했다. 유능한 사람임과 동시에, 동료임과 동시에 모든 일의 흑막인 나를 보면서. 완벽하게 되살아난 나를 보면서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항상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제 알았다. 그녀가 나를 방에 부르는 이유, 술을 권하는 이유, 나에게 욕을 하고, 나와 의논하고, 지금 나를 벽에 밀어붙인 채 울고 있는 이유.
그녀는 나를 애증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인류를 절망시킨 집단이다.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모두에게 희망을 전했다.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사랑하던 부모를 죽였다. 증오하는 사람이지만, 마냥 증오할 수는 없다.
그런 감정 안에서 메카루는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감정을 정리하기도 힘들 때 앞에 나타난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을까. 그 모습만 봐도 죽이고 싶은 사람과 동시에 함께하고 살고 싶은 사람을 보면서 무슨 행동을 먼저 취하려 했을까.
메카루와 같은 사람이라면 분명 자신의 감정 역시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가 나를 애증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순 있어도 속일 수는 없으니, 그 감정을 이해한다고 해도 행동과 생각은 달랐겠지. 항상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던 그녀에게는 더없이 혼란스러웠을 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녀를 좋아한 이유 역시 알 것만 같다. 평소의 완벽한 모습, 그와 상반되는 그녀의 타들어 가는 마음.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그 감정들을 속에 삭이고, 썩히고, 이윽고 자기 자신마저 태워버리는 그녀를 내가 멈추고 싶다. 고치고 싶다. 그녀가 스스로를 싫어하게 만드는 모든 면을 내가 끌어안고 감내해 보듬어주고 싶다.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그런 오만한 감정이 나를 삼키고 그녀에게로 데려간다.
다시 묻겠다. 내가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반은 과거에, 반은 현재에 사는 그녀에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보며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나를 사랑하고 나를 증오하는 그녀에게, 그런 자신이 끝없이 싫어지려고 하는 그녀에게, 그 모든 일 때문에 취할 정도의 술로 자신을 몰아세우며 모든 것을 잠시라도 잊으려는 그녀에게 내가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할 말은 없다.
나는 메카루 씨를 와락 껴안는다. 그녀는 놀란 눈치다. 그녀는 말을 더듬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다.
"마... 마에다? 너 지금..."
"정신 차려요. 메카루 씨."
몇 번 히끅이던 메카루 씨의 눈동자에 빛이 돌아오고, 그녀는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세상에 적응하려 한다. 그리고 나에게 안긴 자신을 발견한다.
"야, 이거 안 놔?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아까는 스스로 안기셨잖아요. 안 놔줄 거에요."
"내, 내가 그랬다고?"
그녀는 떨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격렬한 저항이 없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만약 싫었다면 메카루 씨는 날 반 죽여놓았을 거다. 그리고 난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할 정도로 멀쩡하다.
"많이 힘들었죠?"
메카루 씨는 말문이 막힌 듯, 입만 뻐끔거린다.
"미안해요. 메카루 씨가 알고 있던 마에다 유우키가 아니라서. 내가 그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마, 마에다..."
"울어도 괜찮아요. 부끄러워 하실 거 없어요. 메카루 씨가 마음 가는 대로 하세요. 제가 싫으시면 저를 때리셔도 돼요. 제가 좋으시면 매일 저를 방에 부르셔도 돼요. 대신...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고 하지 마세요."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비어있는 내 몸에 주먹을 정통으로 날린다. 메카루 씨는 보기와는 달리 손이 매운 편이었다. 눈물이 찔끔 나올 뻔한다.
"난 네가 싫어."
"전 메카루 씨가 좋아요."
"난 그런 네가 너무 싫어... 근본도 없으면서, 되도 않게 상대를 헤아려주고, 위로해주고, 나를... 삼켜버려. 그런 네가... 너무 싫어."
메카루 씨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난 원래 이러는 사람이 아니야. 난 술에 취했고,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구별이 안 가.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아. 인사불성이라고. 알겠어?"
"누구보다 잘 알아요."
"입 벌려."
그녀와 나는 입을 맞췄다. 내가 키가 더 작았다.